길이 있어 길을 걸었습니다. 늦은 오후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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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호 11면

길이 있어 길을 걸었습니다. 늦은 오후의 북향 길은
그늘 빛이 상큼합니다. 사물들이 다투지 않고 고요하게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길을 걸으면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홀로 걸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깊은 소리가 숲길을 지나갑니다.
상수리나무를 쪼아 대는 딱따구리의 진동소리 묵직한 울림이,
서어나무 잎이 떨어진 바위 숲에서 바쁜 다람쥐의 발자국 소리가,
늦가을 공기를 헤치며 흐뭇한 미소를 띤 나의 한걸음이,
깊은 생각이 숲길을 지나갑니다.
길이 굽었습니다. 굽은 길도 내딛는 발걸음은 항상 정면을 향해
바르게 걷게 됩니다. 살아가는 것도 그렇습니다.
다른 이가 보기에 굽은 삶일지라도
본인은 항상 곧은 삶을 산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다만 길을 가다가 어디까지, 어디로 왔는지,
온 길을 돌아보는 것을 빼먹지는 말아야겠습니다.

PHOTO ESSAY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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