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BOOK] 밤에도 일하는 우리, 뭘 잃어버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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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잠 못 이루는 밤
엘뤼네드 서머스브렘너 지음
정연희 옮김, 시공사
288쪽, 1만3000원

뉴질랜드 문화사학자인 저자는 불면을 가리켜 ‘기묘한 고통’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이 모두 잠들었을 때 혼자 예외의 존재가 됐다고 느끼는 고통. 그는 불면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자에 따르면 고대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의 불면은 없었다. 시간이 개인의 소유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낭비하면 안 된다는 의무감도 없었다. “시간을 상품으로 환산하는 것은 현대에 만들어진 개념”이란다. 고대 중국에선 훌륭한 통치자들이 잠을 자지 않고 나랏일을 고민할 수 있다는 행위 자체가 재능처럼 여겨졌다. 높은 덕망이 잠을 잊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중세나 근대 초기 유럽인은 잠을 사적인 행위로 여기지 않았다. 중세 프랑스에서 왕의 침대는 “왕권의 상징이자 배경”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인류는 ‘불면의 시대’를 맞았다. 지금은 밤늦도록 불 밝히고 일하고, 놀 수 있는 ‘24시간 가동사회’다. 일부 전문가들은 불면의 위험성을 경고하지만 전통적으로 통치자들은 ‘오랜 시간 깨어있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의 수면 부족을 ‘밤의 식민화’라고 부른 학자도 있었다. 인류가 ‘시간’의 개념에 종속되면서 그만큼 잠을 줄여왔다는 의미에서다. 역사와 문학·과학 등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으로 불면의 역사를 풀어놓은 저자는 책의 끄트머리에 자신의 목소리를 이렇게 얹어놓았다. “다행이다. 밤이 있어 시간의 통제라는 허구에 마침표를 찍고, 망각을 연습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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