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그 후 한달] 양양 산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 양양 산불이 난 지 한 달이 지났다. 5일 낙산사에서 신도들이 불에 타 무너진 원통보전 앞에서 합장하고 있다. N-POOL 강원일보=김지환 기자

4일로 산불 발생 한 달째를 맞은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강현면 일대와 천년고찰 낙산사는 화마(火魔)가 할퀴고 지나간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낙산사 초입인 일주문을 지나자 왼쪽으로 수령 100~200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의 그을음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경내의 모습은 더욱 처참했다. 대웅전 격인 원통보전은 깨진 기왓장과 숯덩이로 변한 기둥만 남아 있었다. 불덩이 속에서도 겨우 원형을 보존한 보물 제499호인 낙산사 7층 석탑 앞에서는 한 스님이 '천수경'을 읽고 있었으며 불에 녹아 없어진 동종(보물 제479호)이 세워져 있던 곳에는 표지석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낙산사가 불에 탄 뒤에도 이곳을 찾는 전국의 불교 신도와 관광객,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도들은 부처님 오신 날(15일)을 앞두고 곳곳에 연등을 걸고 있었다.

대공 총무스님은 "평일에는 하루 400~500명, 휴일에는 1000여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며 "부처님 오신 날이 10일도 안 남았는데 잔해를 완전해 제거하는 데 한 달 정도 더 걸릴 것 같아 걱정이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임현순(48.여)씨는 "폭격을 맞은 듯 폐허가 된 낙산사의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며 "하루빨리 옛 모습을 찾기를 기원하며 부처님께 등을 올렸다"고 말했다.

이틀 동안 계속된 산불로 불에 탄 2개 읍.면 21개 리 973㏊의 피해 산림 지역도 마치 거대한 숯 공장을 연상케 했다. 소나무에 손을 대자 시커먼 검댕이 묻어 나왔으며 불길이 지나간 숲에서는 예전의 푸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7번 국도 등 도로변에서 바라본 피해 산림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검은 소나무 군락이 끝없이 이어졌다.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의 생활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163가구 중 95가구가 5.5평짜리 컨테이너 임시 숙소에서 난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나머지 이재민들도 자녀나 친척집 등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컨테이너 안에는 전화기와 TV.냉장고.싱크대 등 최소한의 생활용품이 고작이다. 장롱조차 없어 옷걸이용 행거와 박스 등에 대충 옷가지를 정리해 놓았을 뿐 이불 등 잡다한 짐은 대충 방바닥에 내팽개치고 생활하고 있다.

이재민 박진호(65.여.강현면 용호리)씨는 "날씨가 더울 때는 컨테이너 안이 찜통인 데다 공기마저 탁해 낮에는 아예 들어갈 엄두를 못 낸다"며 "장마와 여름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재민이 새로 집을 지을 경우 건축비로 평당 200만원(보조 68%, 융자 32%)이 지원되지만 현재까지 3가구만 착공했을 뿐이다. 경제적인 부담과 부지 마련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재(60)씨는 "정부 지원금이 4000여만원에 불과한데 어떻게 새집을 지을 수 있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양양=홍창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