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석학에게 듣는다] 미래학자 존 내스비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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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만난 사람 = 길정우 워싱턴특파원]

존 내스비트(70)는 앨빈 토플러와 더불어 미래예측 분야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82년 출간된 그의 대표저작 '메가트렌드' 는 2년 넘게 뉴욕타임스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18개 언어로 번역돼 8백만부 넘게 팔렸다.

'글로벌 패러독스' '메가트렌드 아시아' 등 연이어 출간했던 그가 새 저작 '하이 테크, 하이 터치(High Tech, High Touch)' 를 선보였다.

책의 부제 '기술과 삶의 의미를 찾아서' 가 말해주듯 '하이 테크' 에 찌든 인간생활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서는 '하이 터치' 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신간 소개를 위해 전국을 순회 중인 내스비트와 어렵게 인터뷰를 가졌다.

[만난사람= 길정우 워싱턴 특파원]

-21세기는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보나.

“유전공학의 발달은 인간생활의 기초를 흔들어 놓을 것이다.모든 기술분야를 압도할 유전공학은 유전자(DNA) 코드를 변화시켜 인간이 자신의 장래를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5백년전 갈릴레오의 천동설(天動說)과 150년전 다윈의 인류진화론에 이어 새천년 인간생활 모든 분야에 미칠 유전공학의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파킨슨병 같은 것은 유전자 배열을 수정해 치료할 수 있게 된다는 긍정적 효과도 있겠지만 인간복제에 수반될 예상치 못한 문제점도 등장할 것이다.

정보기술 혁명이 미칠 파장 또한 상당 할 것이다.컴퓨터와 같은 ‘하드 테크’의 발전보다는 생화학분야 등에서의 ‘소프트 테크’ 개발에 주목해야 한다.”

-새 책에서 기술에 찌든(intoxicated) 인간생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선진국일수록 더욱 그렇다.이젠 기술과 인간성의 조화에 신경쓸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기술개발이 사회변화를 낳기 마련이지만 급속한 기술혁신에 사회변화가 따라가질 못하고 있다.인간은 기술과 사회변화간의 벌어지는 격차 속에서 점차 균형감을 잃고 있다.“

-그래서 ‘하이 타취’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렇다.하이 타취는 기술은 물론 예술,종교,시간 등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인간성(humanity)의 렌즈로 들여다 보자는 말이다.

기술은 문화발전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려는 욕구는 거의 본능적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일과 삶의 현장에서 인간성을 되찾으려면 때로는 기술을 적절히 멀리하는 지혜도 깨달아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업의 예를 들자.기술혁신과 고객관리,피고용자 처우 등을 두루 균형있게 관리할 수 있는 회사가 성공적인 사업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우선 현존하는 기술의 적실성을 직시해야 한다.그다음 기술과의 적절한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신기술이 실생활에 응용되기 이전에 그 기술의 이점과 파장 등을 두루 점검해 봐야 한다는 말이다.일단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되면 새로운 기술개발에 따르는 불투명한 장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리고 기업인들은 고객과 피고용인들에 대한 서비스의 초점과 방향을 재조정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기술에 찌들어 상실했던 부분을 회복하는 셈이다.“

-하이 테크와 하이 타취의 적절한 배합이란 어떤 것인가.

“반(反)기술 강령(綱領)을 강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기술은 인간생활을 풍요롭게 할 수도 있지만 또 인간다운 삶을 파괴하고 왜곡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하이 테크와 하이 타취’를 적절히 배합해 성공한 사업이 있다면.

”요리,집안가꾸기에서 부터 패션과 생활용품까지 평범한 여성들의 일상생활에 손을 댄 미국여성 마사 스튜어트를 꼽고싶다.스튜어트는 기술의 지배에서 벗어나 기술을 적절히 활용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스튜어트는 아마도 미국내 가장 첨단기술로 무장된 여성일 것이다.개인 팩스기만 여섯대,14개의 전화선,자동차안에도 일곱개의 이동전화가 설치돼 있다.하지만 자신이 보내는 메시지는 “인간의 손길이 직접 가미된 음식과 생활장식이 줄 수 있는 매력을 확인하라”는 것이다.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하이 타취를 하이 테크를 통해 전파하는 대표적 성공사례다.

미국내 대표적 대형서점인 ‘반즈 앤드 노블’사도 성공사례다.서점 한 구석에 편안한 소파 등으로 아늑한 집안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음료와 간단한 음식도 서비스하는 독서환경을 꾸며내 호응을 얻고 있다.

전세계의 대표적 첨단기술업체인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경우도 흥미롭다.시애틀 본사건물은 주변에 심어진 나무들에 파묻히도록 나지막하게 지어져 있습니다.아시아 대도시에 속속 들어서는 고층건물들에서 찾기 어려운 하이 타취라 할 수 있다.“

-21세기 인간의 행태에서 크게 달라질 것은.

“인간은 정신적 안정과 종교생활 등에 더욱 집착하게 될 것이다.서구의 물질적 풍요(physicality)에 더해 동양의 정신생활(spirituality)에서 교훈을 얻으려 할 것이다.

지난 4년간 미국에서 출간된 서적 가운데 동양의 정신세계를 다룬 책이 8백여편이 넘는다.21세기 우리는 예술과 문학 등에서 인간의 정신생활을 부각시킨 르네상스를 맞게 될 것이다.”

-지난 2년간 아시아는 금융위기 등 어려움을 경험했다.그러면서 아시아적 가치체계의 붕괴를 얘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시아의 경제위기는 통화위기였을 뿐이다.그 결과 또한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고 본다.오히려 더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예고한 사전경고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양에서 정신세계의 의미를 강조하는 전통은 물질문명에 찌든 서양에 여전히 적지않은 교훈을 주고 있다.서구사회에서는 이미 정신과 육체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는 자각이 일고 있으며 21세기에는 인간의 심성(心性)을 중시하는 동양전통을 수용하는 분위기가 더욱 고조될 것이다.“

-장래에 국가와 기업 그리고 인간생활의 경쟁력을 결정할 요인은.

“기술혁신과 경제시장 단일화가 21세기에도 계속될 현상이라면 이를 주도할 인력을 배양하는 교육이 각 분야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교육이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배울 것인가(learn how to learn)를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컴퓨터와 같은 폐쇄된 체제에 익숙하도록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인터넷의 확산으로 세계화 추세는 가속화될 것이다.그러나 인터넷은 어느 한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공간이다.그만큼 인성(人性)교육이 중요해 질 것이다.

또 인적자원이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할 때 여성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 질 것이다.이미 미국내 기업 창업자들 가운데 여성이 남성의 배를 넘는다.특히 50대에 접어든 베이비 붐 세대의 여성들은 수많은 기업체에서 관리직에 올라있다.현재 미기업 전체의 48퍼센트가 여성의 소유이며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또 여성들의 본성적인 스타일이 기업문화에 인간적 타취를 가미하는 데 도움된다.여성들의 직감과 느낌 및 신심(信心)이 기업문화에 신뢰감을 부추기는데 기여하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21세기 국가나 정부의 역할은.

”창의력을 가진 인간의 활동에 따라 국가의 의미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현재 영국왕실의 경우처럼 상징적 존재로 퇴화할 것이다.오히려 국가는 소속원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수단으로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또 정치보다 경제가 지배하고 국가간의 상호의존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민족이나 국가의 정체성 약화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하지만 반대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는데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본다.

정부는 갈수록 심화될 기술과 정신생활의 편차를 줄이고 인간이 균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일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말은.

“경제분야에서 네트워크가 국가의 영역을 무실화시키는 현상은 21세기에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해외에 흩어져 있는 한국민들의 네트워크가 화교(華僑)들 처럼 경제적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한국정부는 시장의 기능에 그 자리를 내줘야 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한국의 재벌은 중소기업 육성에 눈을 돌려야 한다.정부 또한 규제완화,자유화,중소기업 육성에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한국경제의 장래를 낙관한다.변화의 정도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정부의 역할은 적을수록 또 기업인의 역할은 증대될수록 성장은 가속화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오늘날의 사회변화는 기술혁신의 결과다.21세기 성공과 생존은 인간의 원초적이고 감성적인 요구를 반영한 ‘하이 타취’와 ‘하이 테크’를 얼마나 잘 조화시키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그 결과에 따라 우리 삶의 질과 방향이 달라질 것이다.동양에서 말하는 음(陰)과 양(陽)의 조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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