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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에 묻혀 해넘기는 언론 문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언론장악 문건' 사건은 많은 의혹을 남긴 채 해를 넘기게 됐다.

여야는 국정조사 실시를 국민 앞에 약속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검찰수사도 의혹의 그늘만 짙게 했다는 여론 비판을 받았다.

여야의 가파른 대치와 정쟁(政爭)의 소용돌이 속에서 언론문건 국정조사 계획은 빛을 보지 못했다.

국민회의는 언론문건을 놓고 "정권과는 무관하다" 고 주장하면서도 국정조사와 줄곧 거리를 두었다.

국정조사의 걸림돌이었던 증인채택 문제가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의 조건없는 증인출석 의사 표명으로 돌파구가 열리는 듯 했다.

그러나 국민회의는 鄭의원의 태도변화를 '고문논란을 피하기 위한 방편' 이라며 외면해 버렸다.

국민회의는 새해에도 국정조사가 힘들 것으로 전망한다.

일부 고위당직자들은 "새해엔 언론문건의 '언' 자도, 청문회의 '청' 자도 꺼내지 않을 것" 이라고 단정한다.

"언론문건 사태는 생산적 정치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 (李榮一대변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두고 "설득력을 찾기 힘들다" 는 비판이 여론과 학계에서 나온다.

서울대 박찬욱(朴贊郁.정치학).한국외국어대 정진석(鄭晋錫.신문방송학)교수는 "언론문건 사건은 민주주의의 본질과 관계된 것으로 옷 로비 사건보다 사안이 훨씬 중요하다" 며 "의혹을 적당히 덮고 지나가려 할 경우 언젠가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朴.鄭교수는 "여야가 국민에게 약속했으면 새 천년에 국정조사를 실시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朴교수는 "정치권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국민의 정치 불신은 심화될 것" 이라고 경고했다.

鄭교수는 "문건 내용과 중앙일보 탄압사태가 상당부분 일치한 데 따른 의혹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덧붙여지고 있다.

연세대 유석춘(柳錫春.사회학)교수는 "정형근 의원을 좀더 일찍 증인으로 내보내겠다는 대승적인 결정을 했다면 국민회의가 국정조사를 기피하기 어려웠을 것" 이라고 꼬집었다.

한나라당이 대여(對與)공세를 통한 정국주도권을 잡는 데 더 신경쓰는 바람에 진실규명이 안된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

결국 ▶문일현(文日鉉)씨가 국민회의 이종찬(李鍾贊)부총재에게 문건을 작성해 전달한 이유▶李부총재의 말이 왔다갔다한 까닭▶文씨가 노트북 하드디스크를 훼손한 이유▶文씨가 청와대측과 자주 통화한 까닭은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이들 학계 인사들은 "언론문건 파문이 99년 한국 정치의 대표적 미제(未濟)사건으로 남게 된 것은 우리 정치의 한계" 라고 지적했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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