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새뚝이] 2. 정치- 청와대·국민회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 한광옥(韓光玉)청와대비서실장.한화갑(韓和甲)국민회의 사무총장〓집권세력 내 강력한 '2H' 체제를 구축했다.

그만큼 金대통령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여권의 내년 4월 총선전략 짜기, 임기 후반의 국정과 권력관리에 있어 2H체제의 위력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2H체제는 동교동계의 영향력 확대를 의미한다.

한광옥 실장은 97년 대선 때 DJP단일화 협상 등 DJ정치의 '극적인 장면' 때 브레인으로 등장했다.

언론문건 등 국정 표류 속에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金대통령은 그를 차출했다.

그는 최근 노사갈등의 현장을 찾아다녔다.

비서실장의 이미지에 붙어다니는 그림자 보좌론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60년대 중반부터 金대통령을 보좌해온 한화갑 총장은 차분함과 집념으로 역할공간을 넓혔다.

요란하지 않으면서 치밀하게 정국쟁점을 관리.처리하는 스타일로 대통령의 신임을 두텁게 했다.

한나라당쪽에서도 그의 탄력적인 현안 접근자세에 호감을 표시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여권에서 2년 연속으로 유일하게 새뚝이로 뽑혔다.

남궁진(南宮鎭)정무수석은 성실과 끈기로 2H체제를 밀어주고 있다.

◇ 임동원 국정원장〓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수장(首長)으로 막판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金대통령의 대북한 접근방식인 '햇볕 정책의 전도사' 로서 그의 행동반경과 위상은 훨씬 넓어졌다.

햇볕정책의 전략을 짰던 청와대 참모(외교안보수석) 때나, 그 전략을 실천에 옮겼던 통일부 장관 때 그에 대한 金대통령의 신임은 각별하다.

그가 金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95년 아태평화재단 사무총장을 맡으면서부터다.

군대시절(육사 13기.소장예편)에는 반(反)하나회의 간판이었고 야전보다 전략기획쪽에서 일했다.

차분하고 설득형인 그의 스타일에서 볼 때 전임 이종찬.천용택 원장 때와 달리 국정원과 정치의 거리가 멀어질 것이란 게 일반적 전망이다.

국정원이 익명(匿名)의 생리에 충실해질 것으로 보인다.

◇ 새 천년 민주신당〓정당의 3요소는 조직과 돈.홍보다. 민주신당에서는 정균환(鄭均桓)조직책선정위원장.이재정(李在禎)총무위원장.김민석(金民錫)대변인 트리오가 맡고 있다.

李위원장은 신당에 참여한 재야인사의 간판격. 국민정치연구회를 이끌고 신당에 합류하면서 목사(성공회대 총장)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전 당원 당비 납부운동이란 새로운 정치실험을 하는 중이다.

국민회의 사무총장을 지냈던 鄭위원장은 金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영입작업을 지휘한 데 이어 조직책 공천심사를 맡아 정치적 무게를 더해가고 있다.

金대변인은 30대 초선답지 않은 마당발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386세대를 비롯해 새 인물의 정치권 진입 창구역을 맡았고, 차세대 주자로서 자신의 정치적 장래도 다지고 있다.

◇ 국민회의 김근태(金槿泰).노무현(盧武鉉)부총재, 이인제(李仁濟)당무위원〓여권에 있으면서도 집권 내부의 문제점을 과감하게 지적하면서 밀레니엄 리더십의 인상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李위원은 민주신당의 지도체제와 관련, "대통령은 국정에만 전념해 1인 정당의 폐해를 청산하자" 고 폭탄발언을 했다.

금기시되던 'DJ(金대통령) 2선후퇴론' 의 물꼬를 트면서 97년 대선후보로서 위상복귀에 나섰다.

金부총재도 "1인 정당의 개혁이 급선무" 라며 당 체질의 개선, 정치문화의 개혁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합리적 재야라는 이미지 관리에 열심이었다.

부산에서 출마할 盧부총재는 "내년 총선에서는 '3金정치 극복 선언' 을 하겠다" 고 예고하고 있다.

이들 모두 'DJ 이후' 를 대비하고 있어 제 목소리내기 경쟁은 새해에 가열될 전망이다.

김진국.이영종.최훈.이정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