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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동조 철학자들 평가작업 서둘러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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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철학계가 21세기 철학의 미래 전망과 20세기 철학에 대한 평가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소장철학자들이 유신정권에 동조한 원로 철학자들에 대한 평가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전북대 김의수(철학)교수는 최근 "한국 철학계가 수구세력을 청산하지 못해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상실하고 있다" 는 요지의 글을 발표했다.

'한국 철학계의 시계는 거꾸로 도는가' 라는 제목의 이 글은 지난 8월 고려대에서 열린 '한민족 철학자 대회 1999' 의 발표자 선정 문제에 초점을 맞춰 철학계를 비판하고 있다.

김교수는 "20세기 한국철학의 반성과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로 마련된 대회에 대표적인 유신 철학자 3명이 대회 고문과 기조 발표자로 등장한 것은 큰 문제" 라고 지적하고 이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반성과 평가가 없었던 한국 철학계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교수는 서울대 백종현(철학)교수가 발표했던 '20세기 한국 철학' ( '철학과 현실' 봄호)을 인용하며 자신의 주장이 한국 철학계의 일반적 생각이라고 밝히고 있다.

백교수의 글은 "60~70년대 '한국적 민주주의' 라는 개발독재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할 때 철학계는 침묵했을 뿐 아니라 상당수의 '철학자' 들은 당시의 보수 반동적 주류에 합세했었다" 는 내용이다.

뒤늦게 이런 비판을 제기한 이유에 대해 김교수는 "대회의 연장선상에서 지난 10월부터 12월까지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 진행된 '사이버 한민족 철학자 대회' 에서도 유신정권에 동조한 철학계 수구 세력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 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교수는 "유신 철학자들의 복권은 유신 이데올로기와 철학자들의 관계에 대한 정리 작업이 끝난 후에야 가능하다" 며 "21세기의 철학적 전망을 자유와 공동체 정신을 살려나가는 것에 두기 위해서라도 그들에 대한 평가작업에 나서야 한다" 고 제안했다.

한민족 철학자 대회를 개최했던 한국철학회 이초식(고려대.철학)회장은 "평가 자체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지만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할 때는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해 조심성 있게 해야 한다" 며 "과거의 행적을 따져 어떤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문제를 삼는다면 철학계나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기 힘들 것 같다" 고 말했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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