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선씨 처리 검찰 표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대검 중수부는 오늘 중으로 박주선(朴柱宣)전 비서관에 대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키로 했습니다. "

朴전비서관의 사법처리를 논의하기 위해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과 대검 간부들, 서울고.지검장이 참석한 가운데 대검에서 열렸던 4시간30분간의 마라톤 회의를 마치고 기자실로 내려와 이같은 회의결과를 발표한 대검 차동민(車東旻)공보담당관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회의과정에서 무슨 얘기들이 오갔느냐" 는 질문에 일절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영장청구 사실만을 확인해 준 뒤 서둘러 자리를 떴다.

회의를 마친 뒤 총장실을 떠나는 검사장들은 전원이 함구로 일관했다. 일부 검사장은 불쾌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대검에선 지난 4일 김태정(金泰政)전 검찰총장의 구속을 앞두고도 이같은 회의가 열린 적이 있었다. 당시는 두시간이 채 못돼 金전총장의 구속영장 신청으로 방향이 결정됐다. 하지만 이번엔 회의가 4시간을 넘겼다.

朴전비서관의 사법처리를 둘러싼 검찰 수뇌부의 고민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이를 입증하듯 대검 청사에는 이날 하루종일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이날 새벽까지 보고 문안을 정리했던 수사팀은 오전 9시 그간의 수사결과와 적용법규 신병처리 문제 등을 총정리한 종합보고서를 신광옥(辛光玉)중수부장에게 제출했다.

辛부장은 수사팀과 함께 곧바로 박순용검찰총장실을 찾았다. 1시간 가량 지난 뒤 자리로 돌아온 辛부장은 상당히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는 "수사팀의 복안을 충분히 설명드렸으며,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본다" 고 말했다.

오후 3시 검찰총장실에 서울고.지검장, 대검의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이 속속 모이면서 긴장은 극에 달했다. 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일절 언급을 회피한 채 총장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문은 굳게 닫혔다.

회의는 저녁식사를 걸러가며 오후 7시30분까지 계속됐다. 그 사이 이 사건의 주임검사인 박만(朴滿)부장검사는 수시로 들락거리며 조사서류를 회의실로 갖고 들어갔다.

이날 회의는 수사팀이 朴전비서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하는 이유를 적시하면 참석한 검사장들이 돌아가며 이에 대한 법률적 문제점과 자신의 견해를 제기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그런 정도로는 영장청구가 안된다" 는 일부 검사장들의 강력한 반발도 뒤따른 것으로 알려진다. 사건 하나를 놓고 검찰 수뇌부가 집단 토론을 벌인 것인데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한 검사장은 "교황을 선출하는 것 같다" 며 난상토론 분위기를 전했다.

검찰 수뇌부는 회의가 끝난 뒤 회의내용에 대해 일절 함구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검찰 수뇌부의 이같은 고뇌는 朴전비서관의 사법처리가 몰고올 향후 파장 때문이다.

이미 수사실무 책임자였던 이종왕(李鍾旺)대검 기획관이 수뇌부와의 갈등 끝에 사표를 제출한 마당이다. 하지만 "과연 현재의 증거만으로 영장을 청구하는 게 가능한가" 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회의결과는 수사팀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朴전비서관 처리가 마지막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대검청사는 물론 서울지검 등에서도 처리결과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일선 검사들도 통상 사건 때와는 달리 이날은 퇴근도 미룬 채 대검에 근무하는 선후배, 동기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수뇌부 회의에서 어떤 결론이 내려졌는지를 물어보는 모습도 보였다.

김정욱.이상복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