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지키기’ 간부, 입금증 포토샵 조작 2억대 챙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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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만화가협회는 최근 3년여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국고 보조금 11억2000만원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이 단체 간부 유모씨 등 3명은 보조금을 개인 계좌로 빼돌리고 문화부에는 위조한 계좌이체증 234장을 제출했다. 과거 거래대금을 지급할 때 받은 계좌이체증을 포토샵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새것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들은 이 같은 방법으로 2억8241만원을 횡령, 개인용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2. 행정안전부와 서울특별시·문화부는 지난 3년간 범국민예의생활실천운동본부에 보조금 3억7400만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 중 2억866만원이 이 단체 간부 최씨의 개인 용도 등으로 쓰였지만 까맣게 몰랐다. 최씨가 거래처에 송금한 인터넷뱅킹 자료를 증빙 서류로 제출했기 때문이다. 실제 최씨는 일단 거래처에 돈을 송금한 뒤 거래처 관계자 21명에게 빌린 인터넷뱅킹용 공인인증서를 이용, 다시 자신의 계좌로 입금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감사원이 적발한 민간단체의 국고 보조금 횡령 수법은 다양했다. 전체 보조금 4637억원의 10.8%에 달하는 500억여원이 부당하게 사용됐다. 보조금을 당초 목적 이외에 부적절하게 사용한 단체는 전체 조사 대상 단체의 25.8%에 이르렀다.

특히 진보 진영의 대표적 문화예술단체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내에서 발생한 횡령 액수는 적발 단체 16곳 중 가장 컸다. 이 단체 전 팀장 김모씨는 세금계산서·계좌이체증을 중복 제출하거나 허위로 작성된 소득세 원천징수 영수증을 제출하는 방법 등으로 2년간 4억9290만원을 개인용도 등으로 사용한 혐의가 확인됐다. 김씨는 단체 운영비로 썼다고 주장했으나 이사장과 사무총장은 “사용처를 모른다”며 김씨를 고소했고, 이후 김씨는 잠적했다는 게 감사원 측 설명이다.

환경단체인 한강지키기운동본부의 전 간부는 세금계산서와 무통장 입금증 등을 포토샵으로 위조하거나 전·현직 간부 32명의 목도장을 파두었다가 각종 수당지급표 31장을 작성해 증빙으로 제출하는 등 2억2210만원을 개인 용도와 단체 운영비 등으로 편법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영상포럼은 허위의 용역 계약을 맺고 돈을 지급했다가 같은 날 돌려받는 등의 방식으로 1억3500만원을 횡령하거나 용도 외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유명 단체인 한국독립영화협회 관계자 3명은 실제 지급하지 않은 인쇄비와 기념품 제작비를 지급한 것처럼 허위 보고하거나 인쇄비 허위 세금계산서를 제출하는 등의 방법으로 4847만원을 횡령하거나 보조금 용도 외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단체는 운영비로 사용했다고 주장했으나 사용내역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게 감사원 얘기다.

극단 산울림 대표는 무대제작비를 실제 집행금액보다 많은 금액을 쓴 것처럼 정산보고하면서 허위 세금계산서를 제출하거나 증빙을 제출하지 못했다. 또 기자재 구입비도 실제 쓰지 않았는데도 집행한 것처럼 보고해 총 2324만원을 횡령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대표는 감사원 측에 개인 생활비와 신용카드 대금 등으로 사용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감사원 관계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경우 보조금 지급 이후 관리는 물론이고 대상이 아닌데도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대상 선정조차 잘못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보조금 환수와 관련 공무원 문책,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촉구 등 후속 조치를 이르면 11월 말 발표할 예정이다. 한때 이번 감사를 두고 지난 10년 진보 정권의 진보·좌파 단체에 대한 국고 지원에 현 정부가 칼을 들이대는 게 아니냐는 ‘표적 감사’ 논란이 일었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논란이 일었던 촛불 시위 참여 단체 등은 연간 보조금 8000만원 미만을 받아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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