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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칼럼] 21세기는 권력분산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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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계화.시장화.정보혁명. 독립적이면서도 상호 연관되는 이 세가지 경향은 21세기는 중앙정부에 집중돼 있는 권력이 분산되는 시대가 될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세계화는 국경을 넘나드는 재화.인력.아이디어들의 규모와 속도가 증가하면서 물리적 거리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말한다.

세계화는 정보혁명으로 크게 촉진돼 왔다. 또 교통.통신수단의 발전으로 각국은 세계 시장이 지닌 힘을 외면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시장화는 세계화의 일환이다. 국가와 시장간의 힘의 균형은 1970년대를 분기점으로 시장쪽으로 기울었다.

정부에서 시장으로 권력이 넘어가는 현상은 통화가치 유지.경제형태 및 세금정책의 선택.사회기반시설 제공 같은 핵심 영역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시장화의 요인은 복합적이지만, 그 결과는 정부에서 민간영역으로의 권력분산으로 요약된다.

정보혁명은 컴퓨터와 통신수단을 사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극적으로 줄어들면서 경제와 사회에 끼친 영향을 말한다.

정보기술은 지난 5년간 미국 경제성장의 4분의1을 담당했으며, 국내총생산의 8%를 차지하고 있다. 컴퓨터칩의 연산속도는 18개월마다 두배로 빨라지고 있으며, 컴퓨터 사용에 드는 비용은 70년에 비하면 1%에 불과하다. 인터넷의 성장도 엄청나 이를 통한 정보유통은 매년 두배로 커지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사회적으로 완전히 이용돼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는데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예를 들어 전기모터는 1881년에 발명됐지만 헨리 포드가 전기력의 장점을 완전히 살린 공장조직을 만든 것은 거의 40년이나 지난 뒤였다.

즉 아직도 우리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보혁명의 초기단계에 위치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컴퓨터의 이용비용이 낮아지고 소형화.대중화됨에 따라 컴퓨터는 중앙집중화 효과보다는 탈(脫)중앙집중화 효과를 부르고 있다.

더구나 인터넷은 중앙이라는 개념을 거의 갖고 있지 않거나, 혹은 중앙이 잘못됐을 때라도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중앙감시 체제는 가능이야 하겠지만 엄청난 비용과 불만을 초래하게 된다.

새로운 정보기술은 중앙집중화와 관료주의를 약화시키고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정부 역할의 변화까지 부르고 있다.

정보기술이 정치적.집단적 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다음 몇가지 가설로 요약된다.

첫째, 정보기술 발달로 지구촌 단위의 생산전략이 강화되고, 시장에서 정부의 영향력은 줄어들게 된다.

둘째, 정보기술 발달로 지리적 거리 개념이 중요성을 잃게 된다. 이것은 정치행위의 기반인 공동체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셋째, 인터넷으로 국경 및 사법적 관할권 개념은 허물어진다.

넷째, 정보기술 발달로 은행과 돈의 성격이 바뀌면서 과세 및 금융정책에 대한 중앙통제가 점점 어려워진다.

다섯째, 가상공간의 공동체들의 권력이 커진다. 인터넷의 발달로 국가적 차원의 공동체보다는 초국가적 공동체 및 지방공동체가 활성화되고 있다.

여섯째, 대규모 전파.전달(broadcasting)이 쇠퇴하고 대신 소규모 전파.전달(narrowcasting)이 발전함에 따라 중앙정부를 지탱해왔던 공동체 및 합법성 개념에 분열이 일어난다.

일곱째, 교육방식의 변화와 함께 신기술에 민감한 젊은 세대의 증가로 나이.권위.기존 제도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이 사라지게 된다.

정보의 확산은 권력의 분산을 가져온다. 네트워크가 전통적 관료제의 권력 독점을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인터넷 속도가 증가하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의제(議題)통제 능력은 줄어들게 된다.

어떤 일이 벌어질 때 이에 대응하는 정치인들의 재량이 줄어들게 돼 정부는 점점 어려운 처지가 된다.

화폐의 성격이 변하고, 은행의 중개(仲介)영역은 좁아지고, 과세능력은 줄어듦에 따라 중앙정부의 역할은 급격히 축소된다. 민영화 확대와 민.관 협조가 이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새 밀레니엄이 동트는 현재 우리는 아직 정보혁명의 초기단계에 있을 뿐이다.산업혁명의 초기단계가 그랬던 것처럼 신기술에 대한 공공영역에서의 반응은 사적영역에서의 반응보다 더디다.

이런 지체현상은 예견 불가능한 면도 있지만, 예견 가능한 면도 있다. 21세기 민주주의의 미래는 우리가 이를 얼마나 적절하게 구분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조지프 나이 美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

◇ 조지프 나이(61)

-미 프린스턴대 최우수 졸업, 하버드대 박사

-미 국방부 차관보, 중앙정보국 국가정보위원장 역임

-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정치대학원)학장

-저서 : '핵윤리' '국제분쟁 이해' '이끌 수밖에 없는 미국

정리〓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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