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크, 형사처벌 위기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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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시라크(76·사진) 전 프랑스 대통령이 형사 처벌을 받을 위기에 몰렸다. 프랑스에서는 전직 대통령이 사법 처리된 적이 없다. 사비에르 시메오니 판사는 지난달 30일 시라크 전 대통령을 공금 유용 혐의로 경죄(輕罪) 재판소에 넘겼다. 프랑스 경죄 재판소는 징역 10년 이하의 처벌에 해당하는 범죄를 다루는 곳이다.

시라크는 파리 시장이던 1977∼95년 자신이 이끌던 공화국연합(RPR)의 당직자 수십 명을 파리시 직원인 것처럼 속여 월급을 받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프랑스 사법당국은 최소 40명이 위장 취업을 해 총 수백만 유로(현재 화폐의 기준, 당시엔 프랑화)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혐의는 그의 대통령 재임 중에 드러났지만 면책특권이 적용돼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그가 퇴임(2007년)한 뒤 조사가 진행된 것이다.

프랑스 언론들은 우파 정치인들이 이번 기소를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라크는 프랑스 우파를 상징하는 인물로 정치권에는 아직도 그의 측근이 많다. 또 총리를 비롯, 장관과 상당수 국회의원이 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을 겸직하는 프랑스에서는 이 같은 공금 유용은 관행처럼 여겨져 오기도 했다. 장 피에르 라파랭 전 총리는 “이제 와서 그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했다. 좌파 진영도 노골적인 공격은 삼간다. 그가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시라크는 재임 중엔 어려운 경제 등으로 지지율이 낮았지만 퇴임 후에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70%가 넘는 프랑스 국민이 “그를 그리워한다”고 답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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