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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격 높이는 따뜻한 투자, 한국 진짜 OECD 국가 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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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호 10면

“마침내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진정한 회원국이 된다.” 오는 25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의 특별회의에서 한국이 DAC에 가입할 경우다. 현재로선 ‘천재지변’이 없는 한 가입이 확실하다는 게 외교가 기류다. 1996년 선진국그룹이라 불리는 OECD에 들어간 한국은 산하 25개 위원회 가운데 DAC에만 가입하지 못했다. 경제 규모(세계 13위)에 비해 국제사회에 대한 ‘노블리스 오블리주’ 기준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OECD 개발원조위원회 25일 가입

외교통상부 오준 다자외교조정관은 “가입 실사팀이 한국을 두 차례 다녀갔다”며 “공적개발원조(ODA) 유상 원조 비율이 높은 점 등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한국이 2015년까지 국민총소득(GNI) 대비 ODA 비율을 0.25 %로 올리는 목표를 세우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을 평가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 ODA는 지난해 총액 8억 달러로 OECD 국가 중 19위이지만 GNI 대비 비율은 0.09%로 최하위권이다. DAC 회원국 평균 0.3%의 3분의 1수준이다.

OECD 회원 30개국 가운데 DAC에 속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과 슬로바키아·체코·폴란드·헝가리다. 오 조정관은 “DAC는 OECD 체제의 도덕적 척추 역할을 하는 곳”이라며 “전 세계 대외개발협력의 90%를 차지하며 국제사회 원조의 규범을 세우는 위원회”라고 했다. 그는 “일본에 이어 한국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DAC에 가입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4일 외교통상부는 독일 경제협력개발부, 미 브루킹스연구소와 공동으로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제3회 ODA 국제콘퍼런스를 개최한다. 내년에는 150여 개 공여국 및 협력 대상국의 정상 또는 장관급 인사들이 참여하는 제4차 원조효과고위급위원회(HLF4) 회의가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HLF 회의는 3년마다 열리는 원조 분야 최대 회의로 로마·파리·아크라(가나)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개최된다. 11월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맞물려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높이는 이벤트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오준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

원조받다 주게 된 유일한 나라
오 조정관에게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DAC 가입이 갖는 의미를 물어봤다.
“전쟁 후 절대 빈국 상태에서 국제 원조로 연명하다 단기간에 경제 규모 13위의 원조 공여국으로 전환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한국은 광복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국제사회로부터 127억 달러(현 달러가치로는 약 600억 달러)의 원조를 받았고, 무상원조와 차관은 60~70년대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는 데 충실한 종잣돈 역할을 했다. 한국은 95년 세계은행의 차관 대상국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원조 대상국 리스트에서 ‘졸업’했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이후 우리도 국제사회에 본격 원조를 시작해 91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출범시키고 ‘이머징 도너’(emerging donor)로 자리를 잡아왔다. 오 조정관은 “62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82달러일 때 아프리카 가나는 200달러, 북한은 300달러였다. 한국은 2만 달러에 올라섰지만 가나는 500달러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한국은 나름대로 원조 규모를 늘려왔지만 그동안 국제사회로부터 ‘경제력에 비해 너무 인색하다’는 평가도 받아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해 서울을 방문, “한국의 국제사회 기여는 창피스러운 수준”이라고 직설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일본은 85년 1인당 소득 1만2000달러 시대에 대외원조 규모가 GNI 대비 0.29%에 이르렀다. 한 외교소식통은 “한국은 외교무대에서 월드컵대회, 세계 육상대회, 해양엑스포 등 국제적 이벤트를 유치하기 위해 지자체까지 나서 싹쓸이하듯 하면서 유엔평화유지군 파병이나 ODA는 외면한다는 시선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른 외교 소식통은 “70년대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경제대국이 아니라 ‘경제동물’이란 이미지로 평가받은 적이 있는데, 한국이 그 전철을 밟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한강의 기적은 저개발국들의 희망”
오 조정관은 “하지만 한국이 일본에 비해 결코 늦게 출발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을 늦지 않게 자각했다”는 것이다.

“전란의 참화, 국제사회의 구호물품으로 연명한 과거는 우리의 기억 속에 아직 남아 있는 ‘과거’다. 40대 중반 이상이면 학교에서 타먹던 옥수수빵, 유엔 표시가 적힌 분유를 다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국제사회에 한국이 갚아야 한다는 주장을 수용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다.”

-그럼에도 국내의 힘든 사람들부터 돌봐야 한다는 논리가 있다.
“노르웨이는 북구 여러 나라들보다 경제 발전이 늦었다. ODA를 늘리자고 정부가 주장하자 ‘우리가 언제부터 잘살았다고 남을 돕냐. 스웨덴·덴마크처럼 할 순 없다’는 내부 저항이 컸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외 원조가 남을 위한 게 아니라 결국 노르웨이를 위한 것이란 결론에 이르렀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 조정관은 “국제사회에서 개발협력 분야에 대해 잘 정의된 개념이 있다”며 “ODA는 단순히 남을 돕고 기분이 좋아지는 ‘자선(charity)’이 아니라 계몽된 이기심(enlightened self interest)”이라고 소개했다. 진화된, 문명화된 이기주의란 뜻이다. 대외 무상원조를 책임져온 KOICA는 해외봉사단을 파견, 한국형 발전 모델을 전수하고 있다. 90년 44명이 네팔·스리랑카·인도네시아·필리핀 등 4개국에 파견된 이래 4800여 명이 활동했고, 현재 1500여 명의 봉사단원이 40여 개국에서 일하고 있다.

구한말 선교사 유진 벨의 4대손으로, 한국의 성장사를 지켜본 인요한(존 린튼) 연세대 의대 교수는 “대외 원조에 더해 한국민 특유의 근면성과 교육열 등으로 우뚝 선 한국은 저개발국에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한강의 기적이란 복음을 전 세계에 전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바깥을 도와줄 때가 아니란 시각은 “배꼽만 보고 사는 꼴”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농촌운동인 새마을운동을 비롯, 한국이 성공한 개발 모델을 만들어 대외 개발협력에 적용하고 있다. 오 조정관은 “과거 주로 아시아쪽에 집중해오던 ODA 지원을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전 지구적으로 넓혀 균형 잡힌 개발협력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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