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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다모스 계획도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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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호 33면

기원전 5세기 그리스 건축가이자 철학자인 히포다모스에겐 꿈이 있었다. 그는 1만 명의 자유민 남자와 4만 명의 여자, 어린이, 노예(고대 그리스에선 사람을 이렇게 분류했다!)가 모여 사는 ‘이상(理想)도시’를 계획했다. 사방이 성벽으로 둘러싸여 안전하고, 귀퉁이마다 높다란 망루가 있어 공격하는 적들을 미리 발견하고 대비할 수 있는, 안전한 성곽 도시였다. 중심가에는 무역상들이 진귀한 물건을 사고파는 상점들, 장인들이 특산품을 만드는 공방들을 자리잡게 고안했다. 산업과 상업이 동시에 이뤄지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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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꿈은 그리스의 여러 도시에서 생전에 실현됐다. 그리스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히포다모스의 설계에 따라 아테네의 외곽 항구도시인 피레아스를 건설했다. 그래서 히포다모스는 ‘도시계획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기원전 4세기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인도아(印度亞)대륙의 서부를 손아귀에 넣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히포다모스의 계획도시를 적극 채택했다. 정복한 요지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요새 역할을 하면서 현지 주민과 효과적으로 결합하고, 교역·생산 중심지로 만드는 게 건설 목적이었다. 군사·정치, 그리고 경제적인 목적이 서로 결합해 시너지를 이루는 구조였다. 히포다모스의 계획도시는 알렉산드로스가 ‘동서 문화 결합을 통한 헬레니즘 확산’이라는 꿈을 이뤄가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됐다.

그 가운데 하나가 ‘캅카스 산맥의 알렉산드리아’다. 실크로드의 십자로에 위치한 교역도시다. 동으로 중국, 서로 페르시아, 북으로 중앙아시아, 남으로 인도아대륙으로 연결된다.

사실, 이 도시는 캅카스 산맥이 아닌 지금의 파키스탄 서북부와 아프가니스탄에 걸쳐 있는 힌두쿠시 산맥의 발 밑에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두 산맥이 서로 같은 것으로 착각했기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이곳을 7000명의 마케도니아 군인, 3000명의 용병, 수천 명의 원주민이 함께 사는 국제도시로 만들었다.

이 도시는 기원 2세기에 크게 번성했다. 인도에서 온 상아 조각상, 중국 한나라에서 온 칠기,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온 유리잔, 그리스의 대리석 조각상 등이 동서남북에서 흘러 들어왔다. 수백 년 전 멀리 그리스 밀레토스 섬에서 태어난 히포다모스의 꿈이 실크로드 한복판에서 꽃을 피웠다.

이곳의 지금 이름은 바그람이다. 지역재건팀을 호위하기 위해 아프간으로 가는 한국군의 주둔이 유력한 지역 중 하나다. 현재 미군 비행장이 있는 이곳은 오랫동안 외부인에게 배타적인 편이었다. 1841년 영국군은 이곳을 일시 점령했지만 이웃 마을 차리카르에서 지역 군벌에 의해 몰살당했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시 바그람 비행장을 이용해 작전을 펴던 소련군도 10년 만에 이곳을 허겁지겁 빠져나갔다.

바그람에서 과거 실크로드의 영화가 재현되려면 호위팀과 재건팀의 군사·정치·경제적인 목적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지혜를 짜내야 할 것이다. 히포다모스의 계획도시 같은 아이디어가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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