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42. 나는 이렇게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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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학문간 간극이 메워지고 예술과 예술 사이 경계가 허물어지는 오늘날 우리 삶의 빠른 변화들을 떠올려보자.

이제 막 입사한 청춘의 편집자들이 겪음직한 혼돈은 이런 것이지 않을까. 사무실 한 켠에는 막 제본소에서 도착한 신간들이 놓여 있고 또 다른 한 켠에는 겨우 통로만 내놓고 채 미처 정리되지 않는 반품된 책 꾸러미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다.

컴퓨터의 최신 편집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사이 연신 밀려오는 전화를 받으면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하는 오래전 절판된 책을 구입할 수 없겠느냐는 호소이고….

그러다 편집자 3년차가 되면 어느덧 회의가 밀려온다.

이제껏 쌓은 것이 기껏 한 줌도 안 되는 문법 실력과 독자들의 독서 성향에 대한 자그마한 이해인 것을 생각하면.

그래서 전업을 하거나 더 큰 배움을 위해 유학을 떠나거나 또는 현장에 남는다.

그러나 자신은 잘 체득하지 못할지언정 그때부터가 새로운 시작의 시간이다.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면서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그런 점에서 모든 편집자는 타고난 몽상가다.

그 가운데 지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꿈의 한 자락을 거머쥐고 살아남는다.

그러므로 이 세계에는 언제나 젊은 인력들이 넘쳐난다.

문제는 이 젊은 상상력들을 현실과 접목될 수 있도록 추동하고 추진케 하는 힘이다.

이 힘이 체계화되고 강력할 때 우리 출판은 새로이 개화할 수 있는 꿈의 공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책이다.

오늘날 세계가 갖는 이 숱한 혼돈을 이해할 수 있는 편집자는 세계의 주인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으리라.

정은숙 <시인.열림원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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