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6일 경동갤러리서 '20세기 가족 이야기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1면

"하루 하루 성실하게, 양심적이고 건강한 시민으로 사셨던 할아버지의 삶을 통해 너희가 눈에 보이는 무엇을 얻기보다는 마음의 때를 닦는 일에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

할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빛바랜 누런 사진. 그리고 그 옆에 촘촘히 쓰인 어머니의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 조경희(48.경기도 과천시 중앙동)씨가 생전의 할아버지를 보지못한 두 딸을 위해 정리한 사진과 글이다.

세기의 변화라는 물줄기를 타고 가족해체.가족변동이 점쳐지고 있는 이즈음.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듯이 미래에도 여전히 가족은 우리의 마음을 가장 따뜻하게 하는 테마가 아닐까.

지난 시절 서로 등을 비비며 따뜻하게 살았던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20세기 가족 이야기 전' 이 (사)한국문화복지협의회(회장 이중한) 주최로 17~26일 서울 경동교회내 경동갤러리와 여해문화공간에서 열린다.

'우리 시대 일곱 가족의 자화상' 이란 부제답게 일곱 개의 부스가 마련돼 그 각각에 한 가족씩 주제별 전시를 하는 형태다.

일곱 가족은 무작위로 선택된 지극히 평범한 가족들. 서로 별개의 삶을 살아왔지만 20세기.한국이라는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생활했기에 서로 통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나의 육아일기' 란 주제로 한 부스에서 전시회를 갖는 박정희 (77.인천시 동구 화평동)할머니가족. 박할머니는 오남매를 기르면서 썼던 육아일기 다섯 권과 자녀의 생일 선물로 할머니가 직접 지은 동화책 두 권을 전시한다.

종이가 없어 이면지 뒷장에 그적그적 적은 할머니의 육아일기는 이제는 40, 50대가 된 자녀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가슴도 뭉클하게 한다.

"현애 첫돌. 떡과 나물을 준비하고 국도 끓이고 해서 할아버지.할머니를 모시고 일가 아주머니들을 청했다…손님들은 '갓나서는 밉더니 좀 고와졌다' 고 하시며 '양반의 자식은 낫자란다드니 네가 그렇구나' 하셨다. "

박할머니는 "아이들 육아일기를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됐을 때 주었는데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이번에 내놓았다" 며 "아이들이 소중히 생각해 출가할 때도 모두 챙겨갔었다" 고 회고했다.

'모녀 삼대' 란 주제로 전시부스를 꾸민 신승혜(32.서울 서초구 방배동)씨 가족은 신씨.어머니.신씨의 외할머니로 이어지는 모녀 삼대의 이야기를 각종 소품과 함께 엮었다.

외할머니가 혼수로 가져오셨던 한복 속옷과 버선, 그리고 어머니의 바느질쌈, 어머니가 손수 수를 놓아 만들어주셨던 헝겊으로 된 윷판 등이 전시된다.

눌어붙은 검은 밥풀 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는 양철 도시락통, 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함지박, '아기 승혜' 가 입었던 배냇저고리도 함께 선보인다.

이밖에 이현(25)씨 가족의 '성장 - 나의 기원을 찾아서' , 손경원(28)씨 가족의 '맨투맨, 아버지와 나의 이십대' 등 각 가족의 부스마다 정감있는 가족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이번 행사 기획과 진행을 맡은 붐아트기획의 정범 대표는 "새 시대에 대한 기대를 현실화하려면 지나온 삶을 성찰하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고 말했다. 행사기간 중 17~19일은 가족영화제.가족잔치 등 공연도 펼쳐진다.

이 기간에는 가족 기념사진 촬영행사도 열리는데 사진은 2000년 1월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전달된다.

이경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