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용불량자' 선별 사면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정부와 여당은 국민대화합 차원에서 국제통화기금(IMF)경제사범과 경미한 신용불량자에 대한 '밀레니엄 사면' 을 추진 중이다.

고금리에다 신용경색까지 겹쳐 불가항력적으로 부도를 냈거나, 보증을 잘못 섰다가 전재산을 날리고도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히는 등 '선량한' 신용불량자들도 우리 주변에서는 적지않다.

따라서 이들을 구제해 정상적인 경제활동 기회를 보장하고 국민적 화합도 함께 다지자는 사면의 취지에 대해서는 이의(異議)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구제기준과 방법이다.

지난 7월말 현재 전국의 신용불량자수는 부도를 낸 적색거래자 31만명을 비롯해 연체 및 요주의 거래자 등 모두 2백48만6천여명에 이른다.

특히 IMF사태 이후 근 1백만명이 급증했다.

국민 1천명당 52명이 신용불량자이고 보면 이들의 구제는 사회적.국가적 차원에서도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사면해줄 경우 신용사회의 정착은 더욱 멀어진다.

'선의' (善意)의 신용불량 거래자들을 골라 사면해야 하나 이들을 가려내는 기준이 문제다.

현실적으로 IMF사태 이후 실직이나 도산으로 빚을 갚지못했거나, 이들에게 보증을 섰다가 신용불량자가 된 경우, 기타 신용불량 정도가 경미한 경우를 우선대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문제는 적지않다.

IMF사태로 인한 불가항력적 상황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이를 이유로 사면한다면 큰 경제위기를 겪을 때마다 사면해야 하는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다.

뿐만 아니라 똑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실하게 신용을 지켜온 사람들과의 형평에도 문제가 생긴다.

신용불량자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이 되레 불이익을 당하는 결과가 된다면 신용을 굳이 지키려들지 않는 도덕적 해이에 빠질 우려 또한 크다.

따라서 이 모든 정황을 고려해 사면은 신용사회 정착을 그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대상을 최대한 엄선하고 그 과정에서 거래금융기관의 자율적 협조를 받아야 한다.

원래 신용불량자 분류는 금융기관의 고유권한이다.

불량기록을 없앨 경우 신용정보가 손상돼 신뢰가 무너지고, 신용대출이 위축되는 등 금융기관들 입장에서 무리와 부작용도 적지않다.

그렇다고 사면에 무작정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자세는 옳지 않다고 본다.

'불가항력에 대한 사회적 배려' 냐, 신용사회 정착이 우선이냐는 국가적 선택의 문제다.

금융기관들 또한 IMF의 불가항력적 사태로 막대한 공적자금을 지원받고 있는 처지가 아닌가.

원금 탕감 등 '개인적 워크아웃' 까지는 못간다 해도 '선량한' 신용불량자에 대해서는 기록관리기간을 단축하는 등 실질적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들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한다.

빚을 모두 갚고도 신용불량 기록 때문에 금융거래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이들 또한 지금도 적지않다.

은행연합회 같은 협의체가 보다 적극적으로 선별기준을 제시하고 신용불량자 처리에 관한 제도개선을 차제에 강구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