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협상 어떻게 돼가나] 수입쌀, 내년 수퍼서 팔릴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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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쌀이 내년부터 동네 소매점이나 할인점에서 국산 쌀과 나란히 팔리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농림부 윤장배 국제농업국장은 2일 "지난 5월 시작된 쌀 협상에서 미국.중국 등 쌀 수출국들이 자국 쌀을 일반 소매점에서 팔 수 있게 해달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며 "쌀 수입 물량을 계속 규제하려면 소매 판매에 대해선 어느 정도 타협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수입 쌀은 가공용으로만 공급되고 있다. 윤 국장은 "연말까지 진행될 쌀 협상에서 결론이 어떻게 나든 쌀 수입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관세화 유예(물량규제 지속)라는 명분에 집착하기보다 실익을 얻기 위해 협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 쌀 협상 경과와 쟁점=1995년 우루과이라운드(UR)협정이 발효되면서 우리나라의 쌀시장도 개방됐다. 다만 아주 낮은 관세만 붙여 의무적으로 외국 쌀을 사주는 조건으로 10년간 완전 개방을 미루는 특혜를 받았다.

올해가 10년째 되는 해이기 때문에 정부는 지난 5월부터 미국.중국.호주.태국 등 9개 쌀 수출국과 양자 간 협상을 하고 있다.

수출국들의 요구는 거세다. 한국이 계속 특혜를 받으려면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중국의 입장이 강경하다. 수출국들은 의무수입물량(MMA)을 5년 내에 적어도 50% 이상 늘려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20만t의 쌀을 수입하고 있는데 이를 적어도 30만t 이상으로 늘려 달라는 요구다. 쌀 소비가 줄면서 매년 40만t 안팎의 쌀이 남아돌고 있는 우리 실정에선 현재의 MMA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게다가 수출국들은 10년 더 특혜를 달라는 한국 측 요구에 "5년 이상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윤 국장은 "당초 9월까지 협상을 끝내고 3개월간 세계무역기구(WTO)의 검증을 받을 계획이었으나 수출국들의 요구 수준이 너무 높아 9월 말까지 합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실익 챙겨야=전문가들은 지금처럼 물량 제한을 계속하는 것이 우리 농업에 무조건 이득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물량 제한은 일종의 특혜이기 때문에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하고, 그 대가가 지나치게 클 경우엔 차라리 관세화를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물량 제한을 하면 수입량을 예상할 수 있고, 정부가 수급을 적당히 조절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쌀 소비가 매년 줄어들고 있는데 의무수입물량을 계속 늘려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재고가 더 쌓이면 쌀값이 떨어져 농민에게도 이로울 게 없다. 또 한번 정해진 물량은 나중에 관세화를 하더라도 그대로 수입해야 한다. 관세화를 미루는 동안에도 수입 쌀에 적용할 수 있는 관세율은 계속 낮아진다. 한꺼번에 더 큰 충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10년 전 한국과 함께 관세화 유예 조치를 받았던 일본은 이런 장단점을 분석한 끝에 농민.여당.정부 간 3자 합의를 통해 1999년 자진해 쌀 시장을 관세화했다.

이태호 서울대 교수는 "쌀 협상은 구조조정의 시간을 벌어 줄 뿐 우리 농업을 살리는 길이 될 수 없다"며 "농업 경쟁력을 높이고 농민들의 소득을 보전하는 대책을 마련해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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