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보수야당에 첫 여성 당수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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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남성 중심의 프랑스 정치판에 지각변동이 생겼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자 프랑스 최대의 보수우파 정당인 공화국연합(RPR)이 뜻밖에 여성을 당수로 선출한 것이다.

4일 실시된 당수 경선 결선투표에서 미셸 알리오마리(53.사진)하원의원이 장 폴 들르부아예 상원의원을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당권을 장악했다.

여성이 주요 정당 당수가 된 건 프랑스 정치사상 처음이다.

81년 RPR에 입당한 지 5년 만에 하원의원에 당선, 부친의 선거구를 물려받은 알리오마리 신임 당수는 현재 4선의원으로 바스크 지방의 해안도시 생장드뤼즈 시장을 겸하고 있다.

시라크 총리 밑에서 교육부 차관과 체육.청소년장관을 역임했다. 종족학 석사와 법학박사,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고 대학시절 자신의 지도교수와 결혼했다가 헤어진 뒤 줄곧 혼자 살고 있다.

알리오마리 당수의 탄생은 RPR의 '대주주' 인 시라크 대통령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진 것이어서 더욱 큰 파장이 예상된다.

시라크 대통령이 76년 자신이 창당한 RPR의 차기 당수로 들르부아예 의원을 밀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실시된 1차투표에서 알리오마리 당선자는 31%의 지지를 얻는 예상밖 선전으로 들르부아예 후보(35%)를 압박하면서 이변을 예고했다.

이어 1차 투표에서 탈락한 후보들이 잇따라 알리오마리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판세가 기운 것이다.

그녀는 당내 계파갈등을 종식시키고 시대상황에 맞는 새로운 강령과 정책으로 당의 변신을 꾀하겠다고 공약해왔다.

바로 이 점이 현재 급격한 침체 분위기를 맞고 있는 RPR의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공감대를 형성시켰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97년 조기총선에서 사회당에 참패, 야당으로 전락한 RPR는 분열과 리더십 부재의 난맥상을 노출하면서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12.8%로 지지율이 폭락했다.

게다가 당의 핵심인물인 샤를 파스콰가 최근 드골주의 재건을 표방해 프랑스연합(RPF)을 창당해 떨어져 나가면서 당의 내분은 극에 달했다.

이같은 상황속에서 '프랑스의 영광' 에 집착하는 드골주의로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키 어렵다는 당원들의 위기의식이 '탈(脫)시라크' 분위기를 부추긴 것이다.

알리오마리 당수의 출현으로 시라크 대통령은 RPR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 뿐 아니라 2002년 대선에서도 당내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금발에 안경을 쓴 부드러운 외모 속에 송곳 같은 날카로움을 갖추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는 알리오마리 당수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처럼 프랑스판 '철(鐵)의 여인' 으로 비상할 것인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파리〓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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