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78.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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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제13장 희망캐기 ⑬

그가 바지 주머니에서 구겨진 담뱃갑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담뱃갑을 흔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당신 때문에 끊으려고 결심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었더란 말씀이오. "

문을 닫아 둔 까닭인지, 내뿜은 담배연기가 흩어지지 않고 승희의 이마에서 맴돌았다.

그녀는 얼른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경관은 또 웃었다.

베이징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경관이 물었다.

"아가씨를 웃기는 일이라도 있었소?"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는 얼른 표정을 고쳤다.

"관상을 보니까, 곱상하게 생겨서 그런 일을 저지른 여자 같게는 보이지 않는데…. "

"무슨 일로 날 여기까지 데리고 왔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본적이 서울로 되어 있는데, 맞아요?"

"예. "

"가족도 없다는 사람이 어째서 신분증에는 본적이 있고 현주소가 반듯한 글씨로 적혀 있는 걸까? 신분증이 거짓으로 작성되었든지, 지금 나한테 한 말이 거짓말이든지 둘 중에 한가지는 거짓말일 텐데, 어느 쪽이 맞는 거요?"

"무슨 혐의를 받고 왜 내가 여기 와 앉아 있는지 그거나 알아야겠어요. "

경관은 정녕 담배를 끊기로 작정했었는지, 몇 모금 피우지도 않았던 담배를 황급히 비벼 껐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 놓은 그녀의 손가방을 끌어당겼다.

가방 속에 들어 있던 내의들과 양말 등속들이 한 가지씩 분리되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밝은 전등빛 아래에선 혐오감을 안길 뿐인 그 옷가지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승희였다.

경관의 시선은 시종 가방 속에 꽂혀 있었다.

라이터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모두 꺼낸 뒤에 마지막으로 꺼낸 것은 청해식당 주인으로부터 받은 일당이었다.

경관은 그 돈을 손가락에 침까지 발라 가며 느릿느릿 세고 있었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거 사십오만원 맞아요?"

그녀는 모호하게 웃었다. 비로소 그 돈이 사십오만원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경관은 황급히 물었다.

"당신 직업이 청해식당 요리사였는데, 지난 밤에 해고되었지?"

승희 역시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말고 문득 혼란을 느끼고 고갯짓을 멈추었다. 자신의 기억으로는 이 경관과 식당에서 마주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경관이 맨 처음 했던 혼잣소리를 기억해 냈다. 승희는 재빨리 물었다.

"신고라니 무슨 신고가 들어왔단 말예요?"

"이 여자가? 신고를 누가 했든 무슨 상관이야? 당신 이 돈 어디서 났어?"

"해고되면서 임금으로 정산해서 받은 겁니다."

"임금 정산이라? 그거 말 한마디 딱 부러지네. 정신차려 이 여자야. 당신 이 돈, 임금으로 받은 돈인지 강도짓한 돈인지 증명할 수 있어? 강도짓한 것이 아니면 왜 꼭두새벽에 하직 인사도 없이 몰래 그 식당에서 도망쳐 나왔으며, 경관들한테 임검당할 적에 진작 문도 열어주지 않았지? 그리고 죄 없다는 여자가 떨긴 왜 떨어? 저기 온도계 봐. 영상의 온도에 지금까지 떨고 있다는 거 알고 있어□ 죄 짓고 못 산다는 말 들어본 적 있겠지?"

"그 돈이 임금으로 정산해서 받은 돈인지 강도짓한 돈인지는 식당 업주를 불러 물어 보면 당장 드러날 것입니다."

"개수작 말아. 이 돈을 임금으로 주었다면, 업주가 미쳤다고 신고를 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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