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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공약실천 성적표 나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서울 A지역구의 국민회의 소속 B국회의원은 지난 총선 때 재래시장과 전철역을 잇는 지하도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의원의 임기가 다 끝나가는 지금까지 지하도 건설은 시작조차 되지 않고 있다.

부산 C지역구의 한나라당 소속 D의원은 도시 자기부상열차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임기 내 실행은 그야말로 물건너 간지 오래다. 지역구민 李모(58)씨는 "공약을 다 믿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몇가지는 지켜질 줄 알았다" 며 "공약(公約)은 역시 공약(空約)인 모양" 이라고 씁쓸해 했다.

총선 때면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각종 공약. 그러나 임기말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를 감추는 현상이 15대 국회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공약을 지키지 못한 의원들의 이런 무책임함을 보다 못한 일반 유권자들이 현 국회의원들의 총선 당시 공약을 묶은 자료집 '약속 1, 2' 를 펴냈다.

자료집을 만든 주인공은 공학박사.벤처사업가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로 구성된 유니텔 PC통신 정치동호회 '풀뿌리 전자 민주주의(대표 張曺元.41.기업연구소 연구원)' .

이들은 97년 張씨의 주도로 "참여민주주의의 활성화와 건전한 정치토론 문화를 정착하자" 는 데 의기투합해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회원이 8백명에 이른다.

이번에 펴낸 자료집은 8백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자료 수집과 제작에 2년여가 걸렸다. 각자의 생업과 병행하며 의원회관과 지역구 사무실 등지를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張씨는 "의원 사무실을 대부분 점검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공약 점검표' 를 보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의 공약을 기억하지 못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며 "16대 총선에서는 일하는 의원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자료집을 내게 됐다" 고 말했다.

그는 "의원들이 선거때 유권자 앞에서 한 표 달라며 외치던 공약에 대해 이토록 관심이 부족한데 공약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고 개탄했다.

자료집 제작비 6백여만원은 동호회 운영진이 주머니를 털어 마련했고 PC통신사측에서도 일부 도움을 줬다.

제작한 자료집 4백50부 가운데 50부는 국회도서관.시민단체 등에 돌렸고 잔여분은 전화와 E메일로 주문하는 사람들에게 우송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하기 위해 추가제작을 할 계획이다.

참여연대 김민영(金旻盈)사무국장은 "유권자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자료집을 만든 것이야말로 진정한 참여민주주의의 한 모습" 이라며 "유권자들이 정치인을 판단하는 데 있어 새로운 잣대 역할을 할 소중한 자료" 라고 평가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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