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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권불십년, 역사장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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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9.11 당시 뉴욕시장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의 아버지는 무명 복서였다.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줄리아니의 아버지는 비록 배운 것도, 남긴 것도 변변치 않았지만 아들에게 항상 입버릇처럼 당부한 이야기가 있었다. "얻어맞을수록 침착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줄리아니의 아버지가 몸으로 터득해 삶으로 가르쳐준 원칙이었다.

9.11이 터지자 줄리아니는 본능적으로 "얻어맞을수록 침착하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떠올렸다. 그 덕분에 상상하기조차 힘든 가공할 테러로 인해 극한적인 공황상태에 빠졌던 위기상황에서 침착성을 잃지 않고 대처해 사태를 조기에 수습할 수 있었다.

무명 복서 출신 아버지의 가르침

그래서 그해 타임지는 줄리아니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줄리아니의 위기 타개 리더십에 감동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은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또 9.11 이후 줄리아니의 인기는 더욱 치솟아 많은 뉴욕 시민은 연임제한 규정을 고쳐서라도 그가 계속 시장으로 남아 있기를 바랐을 정도다. 이 모두가 무명 복서 출신이었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른 덕분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암 판정을 받으셨다. 그리고 8년 동안 투병하시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세상을 뜨셨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8년의 세월 동안 5남매 중 막내였던 나는 제일 먼저 학교를 다녀온 후 남들처럼 과외나 학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계셨던 방으로 가 아버지의 말동무가 되고 때론 그의 학생이 되었다. 그것이 내겐 다름 아닌 '아버지 학교'였다.

평남 강서가 고향으로 월남민이었던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고향 이야기며, 집안 내력, 그리고 아버지가 살며 겪어야 했던 세월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곤 하셨다. 아버지가 들려 주었던 이야기들을 어린 아들이 모두 기억하거나 소화했을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병든 아버지와 함께 보낸 그 8년의 '아버지 학교'가 끼친 영향은 내 삶에 있어 지대한 것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다시 없는 '혼(魂)의 배움터'였기 때문이다.

'원경'이란 스님이 있다. 속명은 박병삼. 다름 아닌 박헌영의 아들이다. 1941년 박헌영과 그의 둘째 부인 정순년 사이에서 태어나 광복 때까지는 경기도 과천에서 할머니와 거물 간첩 김삼룡의 부인 이순금의 손에 컸다. 광복 직후부터 그 이듬해인 46년 10월 박헌영이 월북하기 직전까지 그는 모두 여섯 차례 아버지 박헌영과 상봉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한국전쟁 직전까지 큰아버지와 함께 서울 장충동에서 살다가 50년 3월 거물간첩 김삼룡.이주하가 체포된 뒤에는 어느 스님 손에 이끌려 동해.단양.담양.구례.무주 등을 전전했다. 덕유산에서 '이현상 부대'를 만나 52년 말까지는 지리산 등지에서 '빨치산' 산사람들과 2년여를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그 후 전국의 사찰을 전전하다 60년 출가해 지금은 평택 만기사의 주지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원경 스님은 속세의 인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쪽에선 골수 공산주의자로, 또 다른 한쪽에선 미제간첩에 종파분자로까지 내몰린 아버지 박헌영에 대한 떨칠 수 없는 연민이 업(業)이 되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출가한 지 40여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모아 그것을 책으로 내는 일을 그치지 않으면서 승속(僧俗)을 넘나들고 있다.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아버지

그렇다. 끊으려야 끊을 수 없고, 고치려야 고칠 수 없는 근원적 존재가 바로 아버지다. 무명이든, 병들었든, 세상의 평가가 엇갈리든 관계없이 아버지는 아버지다. 하지만 지금 이 땅에서는 과거사 청산이라는 이름 아래 시작된 일들이 엉뚱하게 아버지들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은 온데간데 없고 애꿎은 족보와 무덤만 파헤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이 이런 유치한 '족보 테러리즘'으로 변질된 이유는 분명하다. 정치가 역사 앞에 교만했기 때문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 역사장강(歷史長江)"이다. 채 십년, 아니 오년도 못 갈 편협한 정치의 나룻배로는 오십년, 아니 백년을 흘러온 역사의 큰 강을 건널 수 없다. 역사 앞에 겸허한 정치가 나라를 편안케 하는 법이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