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친아와 발기부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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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강일구

경제지표가 올라가고 생활이 부유해지면 그와 반비례해 섹스 기능은 쇠퇴하는 모양이다. 결혼생활 1년 동안 한 번도 섹스를 못했다는 신랑이 처갓집 식구들에게 이끌려 내가 경영하는 클리닉을 찾아오는 빈도가 해마다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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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복잡한 사정이 숨겨져 있음에도 ‘무슨 여자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신랑이 피곤해서 못하는 것을 트집 잡아 일을 키우는가’라며 불쾌감을 드러내는 것이 신랑 측의 공통된 대응 방식이다.

그런 후안무치의 소리를 하는 한심한 장면을 보노라면, 섹스를 하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일이야말로 배우자 된 남자의 의무며 책임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남편들이 의외로 많은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섹스가 주는 긍정적 효과를 애써 외면하고 고독한 독신생활을 고집하는 남자는 천재들 가운데 많은 편이다.

그 대표적 인물로 필자는, 19세기 말 영국의 미술사(美術史)를 연구하던 존 러스킨이란 학자를 들고 싶다. 그는 40여 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저서를 남김으로써 세계 미술학도들에게 다양한 신지식을 공급한 저력의 연구가인데, 저술 활동에 쏟은 그의 엄청난 정력과는 어울리지 않게 여성을 향한 동물학적 정력 면에서는 매우 부진했던 것으로 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오래전부터 프리섹스 바람이 불어닥친 영국이었건만 그는 단 한 차례의 혼전 성관계도 체험하지 못한 채 29세 때 20세 처녀, 에피 그레이와 결혼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신혼 초야부터 성욕부족을 핑계로 아내와의 성 접촉을 한사코 회피해 왔다. 결국 견디지 못한 아내가 이혼을 요구해 서로 헤어질 때까지 10년 동안 각기 떨어져서 자면서 단 한 번도 성행위가 없었다.

이 사실이 소문의 바람을 타고 런던 시내에 널리 퍼지면서 장안의 화제가 되자 많은 언론사 기자가 진정한 이혼 사유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려고 러스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곧 에피 그레이의 재판기록을 보면 그의 주치의는 발기부전이라고 진단한 바 있었다.

당시의 의료 수준에서는 요즘 같은 현대화된 검사기구가 없었으므로 고작해야 발기불능 환자는 정신과 의사가 진료하고 있었는데, 의사는 그가 털에 대한 공포가 원인이 되어 성적 충동이 진화(鎭火)된 것으로 판단했다. 그의 병상일지에는 사회적 격리가 가져다준 성생활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성지식 부족이라고 기록됐다.

즉 러스킨은 백만장자 포도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공교육 과정이 아니라 가정교사에 의해 교육받는 사교육 시스템 쪽을 선택했던 것이 섹스 따위 잡학(雜學)의 지식 공급원이 되는 벗들과 격리되는 불이익을 만들었다고 의료진이 생각했던 모양이다.

미술에는 정통했지만 그림에도 조각에도 음모 묘사가 없어 여자는 전부 무모(無毛)라고 믿고 있던 러스킨이, 초야의 침상에서 털이 난 여자를 보고 아연실색한 것은 처음으로 체험하는 특별한 사태에서 발생하는 자기보호본능의 발현과 같은 것이다. 학우들과 교류 없이 독학한 그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요즘 우리나라도 부모들의 과보호로 러스킨처럼 순진한 청년이 간혹 나타나 신부 가족의 속을 썩이는 경우가 없지 않다. 아름답게 봐야 할 여자 성기를 추하다고 느낄 경우 평소 잘 발기하던 페니스가 요지부동이 되는 것은 당연한 생리반응이다. 그로데스크한 여음에 타격을 받는 약한 남성들 때문에 음모의 일부 또는 전부를 면도하는 것이 미혼여성의 털 관리 요령처럼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코노미스트 10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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