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변명 급급한 문화관광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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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울시와 문화관광부가 협의를 안했다고 보도되니) 보기가 안 좋잖아요. '그 내용이 그 내용 아닙니까. '우리는 협의했다고 봅니다."

10일 오후 2시께 서울시 보도담당관실. 문화관광부 관광호텔 담당 과.계장과 서울시 도시계획국 관계자가 목청을 높이며 언쟁을 벌였다.

문제는 문화관광부가 지난 8일 풍치.고도지구에 관광호텔 건립을 허용하겠다는 발표를 한 데서 시작됐다.

서울시가 "협의를 한 적이 없다" 고 공식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던 것.

문광부 관계자는 "협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라" 는 시 관계자의 요구에 고건(高建)시장과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 장관 사이에 지난 6일 협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장과 장관이 월드컵 상암구장 착공 1주년 기념식장에서 만나 협의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시 관계자가 "대통령이 있는 기념식 자리에서 한마디 나눈 것을 협의라고 할 수 있느냐" 라고 반문하자 답변을 하지 못했다.

정작 기자회견에서는 '상호 협의했다' 는 주장은 사라졌다.

문화관광부는 환경단체 등이 반대하고 나서자 10일 또다시 일방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풍치지구내에서는 숙박시설 건립을 불허하는 건축조례를 개정하고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해 환경훼손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화관광부는 건축조례 개정 권한이 없다.

시 관계자는 "건축조례를 개정하지 않겠다" 고 잘라 말했다.

풍치지구내 호텔건립과 관련된 인.허가 업무는 애당초 도시계획위원회가 심의할 내용이 아니다.

고도지구의 건축 제한 범위내에서 호텔 건립을 허용한다는 10일의 발표는 무의미하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있다.

현재도 허용되고 있는데 마치 새로운 시책인양 내놨기 때문이다. '총선을 노린 선심성 발표' 라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문화관광부의 태도에서 ' '한 건' 하듯 발표한 내용이 언론과 시민단체의 비판에 직면하자 엉뚱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에 불과하다.

'서울 자연경관의 보루' 로 꼽히는 풍치지구에 대한 진지한 고려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문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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