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벤처 보호막 이젠 걷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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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벤처기업을 침체된 우리 경제의 돌파구로 인식하고 육성하기 시작한 지 3년이 됐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가 닥치자 고용창출을 위해 정부가 직접 창업자금을 빌려주고 기술개발 비용을 대주는 방식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가짜 벤처가 나타나는 등 부작용도 있어 이런 창업지원 중심의 정책이 세금 낭비라는 지적도 있지만, 3년 전 1천7백개 정도였던 벤처기업이 오늘날 두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벤처기업 지원책의 방향을 전환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과잉보호의 성격이 강한 종래의 '직접지원방식' 을 지양하고 벤처기업이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간접지원방식' 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그 중에 긴요한 것이 주식 액면가에 대한 규제를 풀어 기업 스스로 자본조달을 원활하게 해주는 것이다.

현행 상법은 주식의 최소액면가를 5천원으로 정하고 있으며, 벤처기업육성특별법에 의해 벤처기업으로 인정된 기업은 액면가를 1백원으로까지 분할할 수 있다. 이런 제도는 주식에 정가를 붙이는 것으로 자금조달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처럼 주식의 액면가를 폐지하든지 최소 액면가를 1원으로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주식액면가는 기술은 있지만 돈 없는 사람의 창업을 어렵게 만든다. 현행 제도아래서는 액면가에 해당하는 현금을 회사에 자본금으로 납입해야 주식을 가질 수 있다. 준비과정에서 아무리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어도 창업시 현금이 없으면 주주가 될 수 없다. 정부에서는 이런 어려움을 해소해 주기 위해 창업자금 지원 또는 기술신용보증을 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는 주식액면가를 없애면 해결될 문제다. 주식에 정가가 붙어 있지 않으면 기술자와 자본가가 협의해 자본금 납입을 기술로 대신할 수 있다. 즉 기술자가 주식 지분에 대한 불안을 떨치고 마음놓고 외부자본을 받아들여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이다.

주식액면가의 두번째 모순은 창업 후 자본조달에서도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기업에 투자하는 자본가들은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해 주가상승의 이익을 남기기 원한다.

그러나 최소액면가가 높게 정해져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큰 주가상승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투자가 원활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 코스닥에서 성공한 회사의 주가가 5만원 정도라고 가정해 보자. 액면가를 5천원으로 시작한 회사의 주식은 10배의 이익을 준다. 또 액면가를 1백원으로 했는데 회사가 대성공해 5만원까지 오른다면 5백배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액면가에 대한 제한이 없는 미국에서 주식이 최소거래 단위인 1센트로 발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주식이 성공적으로 나스닥에 상장돼 주가가 1백달러가 되면 1만배의 이익을 제공한다. 따라서 상장 전에 주식을 10센트에 사도 1천배, 1달러에 사도 1백배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니 창업 후에 여러 단계에서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이다. 사실 빌 게이츠가 오늘날과 같이 세계 최대의 부자가 된 것도 1센트짜리가 1백달러가 되었기 때문이고, 또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이렇게 성장한 것도 주가상승의 이익을 취한 투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처럼 무액면제도가 최선이다. 그러나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최소액면가를 1원으로 낮춰도 투자활성화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주가를 1원으로 시작하면 창업 후 10원 또는 1백원에 투자해도 주가가 더 오를 것을 기대해 투자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식의 개수가 많아져 유동성이 높아지므로 주가상승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그동안 정부의 벤처육성책은 일종의 온실작업이었다. 온실 속에서 거름을 듬뿍 주면서 묘판에 씨를 뿌리고 묘목을 기른 것이다.

이제 비닐하우스를 걷어내고 창업한 회사들이 자립하도록 간접지원방식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벤처기업은 미국식 기업풍토의 꽃이다. 우리도 벤처기업의 꽃을 따려면 미국의 기업환경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수십년 동안 유지해온 주식 액면가 제도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만든 고정관념일 뿐이다. 진정으로 벤처기업 지원책에도 벤처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전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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