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한화 프로야구단 이희수 감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창단한 지 14년 만에 독수리 군단 한화를 프로야구 정상으로 올려놓은 이희수(李熙守.51)감독. 우승 이후 각종 축하행사에 불려다니고 한.일 슈퍼게임까지 준비하느라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인 李감독을 지난 3일 대전 소재 한화구단 사무실에서 어렵사리 만났다. 그는 아직도 우승의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만면에 미소가 사라질줄 몰랐다.

시골 아저씨같은 털털한 인상이지만 프로야구 최고의 고스톱 실력을 자랑하는 머리와 한번 목표로 한 것은 반드시 이뤄내는 집념도 있는 李감독으로부터 그의 야구인생을 들어봤다.

- 지난달 29일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루고 난 뒤 뭐가 가장 달라졌습니까.

"우승을 '했다' 와 '못했다' 의 차이죠. 그건 '살았다' 와 '죽었다' 의 차이라고 봅니다. 승부의 세계에서 2등은 없다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빙그레 시절부터 지금까지 네번 한국시리즈에 도전했고 그때마다 우승을 하지 못하고 준우승에 그쳤기 때문에 1등에 대한 한은 누구보다도 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우승이라는 게 어떤 건지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승을 하면 눈물이라도 펑펑 쏟을 줄 알았는데 눈물도 안나오더군요. "

- 시즌 초반만 해도 한화의 우승을 예상한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중반에 심판폭행 사건이 겹치면서 팀 분위기도 안좋았고…. 그런데 어떻게 막판에 10연승의 상승세를 타면서 한국시리즈까지 날아오를 수 있었을까요.

"쉽게 얘기해 '힘' 이라는 게 생겼어요. 제가 시즌 초반 선수들에게 강조한 것은 '공격적인 야구' 였습니다. 타자는 적극적으로 때리고, 투수는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잡으려 들고, 수비는 실책을 두려워 하지 말고 과감하게 달려드는 그런 자세를 요구한 거죠. 그런데 중반까지는 그게 안됐어요. 그런데 막판, 추석이 지나면서 우리 팀이 달라졌어요. 그래서 10연승도 하고,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한 거죠. 그때는 힘이 생기더라구요. "

- 참, 시즌 중반 심판을 때려 12게임 출장정지를 당하신 적이 있지요. 그때는 어땠습니까.

"공부도 하고, 반성도 많이 했죠. 만날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보다가 유니폼 벗고 관중석에서 야구를 보려니 씁쓸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어떡합니까. 야구 감독이 야구 안볼 수는 없고, 악착같이 관중석으로 쫓아다니면서 경기를 챙겼죠. 그때 야구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벤치에서 보면 투수가 볼을 던지면 위.아래 높낮이는 잘 보이지만 좌우 폭이 잘 안보여요. 그런데 관중석에서 보니가 그게 잘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우리팀 투수들하고 타자들의 습관에 눈을 확실히 떴죠. "

- 매직리그 2위는 했지만 감독 초년병이라고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서 기대 반, 걱정 반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그랬죠. 저도 그랬으니까. 두산과 플레이오프를 할 때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우리 선수들을 믿었으니까요. 그리고 초년병이라 그런지 우승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플레이오프 이기고, 한국시리즈에서 2승을 먼저 하고 나니까 갑자기 부담감도 생기고 이상해지더라구요. 3차전에서 단기전 들어 처음 졌는데 그날 2시간밖에 못잤어요. 연장전에서 1점 차로 졌는데 너무 아쉽더라고요. 나 때문에 졌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까 도대체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

- 5차전에서 우승을 결정짓는 순간은 어땠습니까.

"우리팀 역전의 주인공이 용병 로마이어예요. 로마이어가 9회초 3루타를 때려 동점을 만들고 전세를 뒤집는 득점까지 올린 뒤 자기가 더그아웃 들어오면서 펑펑 울더군요. 그리고 9회말 수비 들어가기 전 저에게 와서 '가슴이 벌렁거리지 않느냐' 고 물어요. 그래서 '아직 그런 기운이 없다. 담담하다' 그랬죠. 그랬더니 '그럼 우리가 이긴다. 우승할 수 있다' 고 그러는 거예요. 그때 비로소 우승에 대한 실감이 나더라고요. "

- 한화그룹하고는 인연이 꽤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농협을 그만두고 77년 지도자를 처음 시작한 곳이 한화그룹의 천안북일고였으며 프로에 들어와서도 84년부터 3년간 롯데에 코치로 재직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빙그레와 한화에서 보냈어요. 그러니까 20년이 넘은 셈이죠. 저뿐만 아니라 구단 임직원들, 그룹 관계자들, 특히 이글스를 유난히 사랑해주신 김승연 구단주도 우승에 대한 '갈증' 같은 것이 있었어요. 이번에 그 한을 풀게 돼 너무 속시원합니다. "

- 천안북일고 시절부터 빙그레 초창기에는 김영덕 감독 밑에서 코치생활을 했고 롯데 초년병과 빙그레 후반, 한화 시절에는 강병철 감독 밑에서 코치를 했습니다. 그 두 분은 무척 대조적인데 이 감독의 지도자 경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두분 모두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김영덕 감독은 투수 출신이라 투수들에 대한 조예가 깊습니다. 반면 강병철 감독은 타자 출신이라 야수들과 타격에 대한 조예가 깊습니다. 그런 두 분의 좋은 점을 골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행운입니다. 그런데 야구팬이나 관계자들도 두 분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어요. 바로 '번트' 인데 김영덕 감독이 '번트감독' 으로 알려졌지만 번트는 강감독이 더 많이 구사했어요. "

- 외모가 '농사꾼 같다' 는 얘기를 많이 하던데 실제로는 넥타이가 1백개가 넘는 멋쟁이시라면서요.

"지금은 70개 조금 넘는 것 같습니다. 농협시절부터 칼같이 날이 선 바지와 넥타이 정장을 즐겨 입었습니다. 외국에 나갈 때마다 사서 모으곤 했는데 요즘은 워낙 양복 입을 기회가 적어 넥타이가 줄었죠. 최근엔 술병을 모으는데 취미를 붙이고 있습니다. 제 외모가 논에서 벼를 심다 온 사람 같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데 그때마다 아쉬워요. 저 자신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멋쟁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태어난 걸 어떡합니까. "

- 국내 프로야구에는 '우승 후유증' 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승한 팀이 그 다음해에는 꼭 하위권으로 처지는 거죠. 해태를 제외하고는 2연패한 팀이 하나도 없잖습니까. 한화의 경우도 올해 우승은 했지만 내년 전력이 많이 약해질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에이스 정민철이 해외진출을 모색 중이고 15승을 거둔 송진우도 자유계약선수가 돼 팀을 옮길지도 모릅니다. 또 코치들 가운데 이번 우승을 계기로 다른 팀으로 옮기려는 움직임도 있고…. 그런데 야구는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팀은 이번 우승으로 자신감이 붙었고 선수들 체질개선도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힘이 생겼기 때문에 내년에도 우승에 도전해 볼만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프로야구 감독은 우승을 목표로 하지 않고는 존재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우승이 목표죠. 2등이 어디 있습니까. "

- 선수들이 힘이 생기게 된 배경에 LA다저스 박찬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얘기입니까.

"97년 애리조나 교육리그에 갔을 때 찬호가 저희팀 훈련장에 찾아왔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유명할 때는 아니지만 그래도 메이저리거로서 꽤나 던질 때였죠. 우리팀 선수들하고는 고향팀이라고 무척 친하게 지내는 것도 있고…. 그때 찬호가 "형들 웨이트 트레이닝 안하면 살아남기 힘들 겁니다. 웨이트 열심히 하세요" 하고 당부를 했어요. 직접 시범도 보였고요. 그때, 물론 그 전에도 선수들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때부터 팀 안에 본격적인 웨이트 트레이닝 바람이 불었어요. 최익성.송지만 같은 선수는 웨이트 트레이닝 좀 그만하라고 말릴 정도예요. 그런데 그게 결국 힘이 되더라고요. "

- 국내감독들은 스타일을 관리냐, 자율이냐 둘로 나눕니다. 스스로 어떤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선수들에 대해서는 개성을 존중합니다. 운동이 끝나면 술도 체력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마시라고 권합니다. 단 몸 관리만큼은 자신이 알아서 꼭 챙기라고 부탁합니다. 야구선수에게 몸은 재산이니까요. "

- 한.일 슈퍼게임 중인데 한.일 야구를 비교해보면 어떻습니까.

"일본은 정석에 바탕을 두면서 실수가 없고 한국야구는 뒤떨어지기는 하지만 기술에서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파워면에서는 오히려 한국이 앞섭니다. 공격적인 야구도 한국쪽이고요. 그러나 변화구 대처능력에서 일본이 월등히 앞서 있어요. 이게 차이를 만들고 있다고 봅니다. 실수가 없고, 투수든 타자든 변화구에 능숙한 것이 바로 일본야구죠. "

- 앞으로 각오와 계획이 있으면 얘기해 주시죠.

"내년에도 정상에 도전할 겁니다. 한화그룹과 20년 넘게 맺어온 인연인데 한번 우승 가지고 되겠습니까. 그리고 다른 욕심은 없습니다. 감독이 되면서 '이게 지도자의 마지막이다' 라는 각오를 했습니다. 여기서 내가 못하면 옷 벗는 거죠. "

[약력]

48년 1월 7일(음력) 부산 출생

61년 부산 동신초등학교 졸업

64년 부산 대동중 졸업후 부산공고 입학

65년 서울 성남고로 전학

67년 성남고 졸업

67년 농협 입단

70~72년 해병대

72~76년 농협

77년 천안북일고 초대 감독

78년 농협 직원으로 근무

79~81년 천안북일고 코치

82~83년 천안북일고 감독

84~86년 롯데 코치

87~94년 빙그레.한화 코치

98년 7월 한화 감독대행

99년 한화 4대 감독

▶부인 김정숙씨와 2남

만난 사람 =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