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달이’ 그대 있어 행복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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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마라토너’ 이봉주(39·삼성전자)가 고별 레이스를 우승으로 장식했다.

이봉주는 21일 대전시 일원에서 펼쳐진 제90회 전국체육대회 마라톤(남자 일반부)에 충남 대표로 출전, 2시간15분25초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1990년 전국체전에서 생애 첫 풀코스를 달린 그는 41번째 완주가 된 이날 은퇴 레이스도 전국체전을 택했고, 결국 우승으로 피날레를 빛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2001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 98년 방콕·2002 부산 아시안게임 마라톤 2연패를 차지하며 ‘국민 마라토너’라는 애칭을 얻었다. 2000년 도쿄국제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7분20초는 여전히 한국 최고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봉주는 “마지막 대회라 더 열심히 준비했다. 마음의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다”면서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섭섭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은퇴 소감을 밝혔다. 연분홍 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응원 나온 어머니 공옥희(75)씨는 레이스를 마친 아들을 포옹하며 “그동안 고생이 많았지”라며 지친 아들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봉주는 “마라톤이 힘들지만 어머니가 고생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던 효자다.

경기 후 충남도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이봉주는 선수 생활을 정리한 영상물이 상영되자 감격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봉주는 이후 내빈들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여전히 자신을 뛰어넘지 못하는 후배들을 향해서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이봉주는 “오늘 경기를 하면서 약간 실망한 것이 사실이다. 후배들이 달리면서 순위경쟁을 하느라 눈치 보는 경향이 있었다. 더 과감하게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봉주는 비가 오는 날엔 우산을 들고 달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연습 벌레였던 이봉주는 “더 성숙하기 위해서는 마음가짐부터 독해져야 한다”고 후배들을 질책했다. 2시간17분42초의 기록으로 2위를 기록한 유영진은 “따라가겠다는 생각으로 뛰었는데 봉주형 페이스가 너무 좋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당분간 휴식을 취하고 공부를 좀 더 하고 싶다”며 “앞으로 후배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 한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대전=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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