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터뷰] 연기생활 30년 기념공연 '코미디황제' 이주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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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추억의 TV프로그램 제목처럼 웃음이 정신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사실은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하지만 남을 웃기은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웃음이 생활 속에 배어있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코미디언 생활 30년을 맞는 이주일(59.본명 鄭周逸)씨의 감회가 남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코미디언은 웃음을 이끌어내기 위해 괴로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온갖 웃음이 터져나왔을 때의 기쁨이 그 괴로움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이 길을 걸어온 것 같습니다. "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은 지난해 4월 SBS '이주일의 투나잇쇼' 를 그만둔 이후 지금까지 얼굴을 비추지 않고 있다. "그저 쉬고 싶었습니다. 정치 끝내고 바로 방송에 복귀하느라 통 쉬지 못했거든요. 운동도 하고 여행도 다녔죠. " 그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 거주하며 1백여 그루의 소나무를 돌보며 소일하고 있다.

그의 3천평 규모 농장에는 담이 없다. 때문에 이 곳은 자신과 알고 지내는 정.관.재계 인사 뿐 아니라 동네 주민에게도 개방돼 있다.

"한마디로 동네 공원이에요. 요즘엔 노인들이 찾아와서 소주를 알아서 드시고 가곤 해요. " 69년 월남 위문공연단의 일원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의 30년 연기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아무래도 80년의 '벼락출세' 다.

80년 그는 처음으로 TV에 캐스팅됐다. KBS 신설 '토요일이다 전원출발' 이었다. "첫 회에 타잔 역을 맡은 가수 윤수일씨가 줄을 타고 내려오는데 제가 실수로 부딪쳐 물 속에 빠졌어요. 이상한 몰골로 물 속에서 나오는데 방청객들이 막 웃더군요. 그 다음 회에는 의사 역을 맡았어요. 환자의 동공을 열어보며 '운명하셨습니다' 라는 대사를 말하는 역할이었는데, 왜 그리 안되던지 NG를 거듭 냈어요. 그러다 실수로 내 눈을 열며 '운명하셨습니다' 라고 했죠. 방청석이 뒤집어졌습니다. "

딱 2주만에 성공했다며 예명도 '주일' 에서 '이주일' 로 바꿨다. 금호동 판잣집은 아침이면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방송.영화.광고 출연 교섭이 물밀 듯 들어왔다.

"무섭더라고요. 재벌 2세들이 술 한잔 하자고 제의도 많이 했죠. 82년엔 한 재벌 회장집 크리스마스 파티에 갔다가 5천만원을 받기도 했어요. " 영화 출연은 한동안 성공에 취해있던 그에게 따끔한 경고가 됐다.

"두 달동안 영화를 7편 찍었어요. '평양 맨발' 이라는 작품 개봉 첫 날 극장에 갔는데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이 '이주일은 사기꾼' 이라며 욕을 하더군요. "

정치는 아직도 그에게 민감한 주제다. 96년 14대 의원 활동을 마치며 '4년동안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간다' 고 일갈했던 그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러 군데에서 다양한 경로로 출마 제의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라는 거 몹쓸 겁디다. 동료 의원들은 코미디언 출신이라고 은근히 무시하고 당은 개인의 소신보다는 조직 논리만 강요하죠. 또 지역구에서는 조그마한 경조사에까지 불러대니…. 내가 모 중진의원에게 물어봤습니다.

'형님은 돈을 이렇게까지 들여가며 어떻게 정치를 합니까' 했더니 그 양반이 '다 해보면 알아' 라고 하더군요. " 하지만 "내가 의정활동을 못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옷 로비 청문회를 보면서 '코미디 공부를 좀 더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는 그의 말이나 '내년 총선에 말을 타는 건 아니냐' 는 질문에 그저 웃기만 하는 그의 태도는 아직 정치에 대한 뜻을 접지 않았다는 인상을 풍겼다.

지금 그의 관심은 29일부터 12월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이주일 30주년 기념공연' (02-3675-2121)에 온통 쏠려있다.

그동안 그의 파란만장했던 연기인생을 담은 드라마와 그가 선보였던 코미디.노래를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전성기이던 80년대 중반 공연을 위해 세종문화회관에 대관 신청을 했어요. '카페트가 더러워진다' 는 이유로 거절하더군요. 몇 번을 더 요청했는데 거부당했습니다. 이번엔 전직 국회의원이라 허용하는건지…. "

30년 연기생활을 1시간40분에 정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주일은 그의 대표적인 유행어로 말을 맺었다. "일단 한번 와보시라니깐요.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

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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