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한인 지방참정권 부여 난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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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재일 한국인의 지방선거 참정권이 실현되도록 각별한 관심을 갖겠다."

지난 23일 제주도 한.일 각료간담회에서 김종필(金鍾泌)총리의 요청에 대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일본 총리의 답변이다. 이는 오히려 지난 9월 한.일 총리회담 때보다 크게 후퇴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때 오부치 총리는 "진지하게 검토하겠다" 고 대답했다.

오부치는 일본신문과의 회견에서 느닷없이 "상호주의의 문제가 남아있다" 고도 했다. 한국은 이미 영주 외국인한테 지방선거 참정권을 주기로 하고 실무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엉뚱한 소리를 한 것이다.

재일동포의 일본 지방선거 참정권 획득이 진통을 겪고 있다. 칼자루를 쥔 집권 자민당이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재일 외국인에 대한 지방선거 참정권 부여는 지난 5일 발족한 자민.자유.공명당의 연립정권 합의사항.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도 찬성하고 있어 참정권 획득은 시기 선택만 남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자민당내 보수세력이 뒷다리를 잡으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당내 정책을 도맡는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정무조사회장, 시마무라 요시노부(島村宜伸)전 농수상 등 유력 의원이 오부치한테 신중한 대처를 요구했다. "참정권을 갖고 싶으면 귀화하면 된다" 는 폭언도 나왔다.

방위청 정무차관의 '핵 발언' 으로 궁지에 몰린 오부치도 당내 반발을 의식해 한발 물러섰다.

자민당은 27일 열린 연립 3당 간사장 회의에서도 참정권 부여에 난색을 표시했다. 공명당이 선거법 개정안까지 제시했는데도 당내 의견조정을 들어 협의에 응하지 않은 것이다.

재일동포의 참정권 획득은 당분간 일본 보수진영의 벽에 부닥칠 것으로 보인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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