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나라당, 고작 욕설연극 수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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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나라당 의원들이 욕설과 야유로 노무현 대통령을 모욕한 것은 잘못이다. 비록 풍자극의 형식을 빌렸지만 그런다고 면책되지는 않는다. '그냥 연극일 뿐'이라고 하기엔 정치적 의도가 너무 강하게 드러났고 품위는커녕 상대에 대한 증오만 담았기 때문이다.

이번 풍자극은 박근혜 대표를 성적으로 모독한 패러디 사진 파문 때보다 문제가 심각하다. 패러디 파문은 청와대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일개 청와대 직원의 잘못이었을 뿐이다. 그나마 문제의 영화포스터 합성사진은 네티즌이 만들었다. 하지만 욕설극엔 한나라당의 주역인 의원들이 대거 출동했다. 그러곤 대통령에 대해 '육××놈''개×놈'등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말을 퍼부었다. 명색이 당 지도부라는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며 박장대소했다. 이것이 한나라당의 도덕 수준이라면 한심하다. 이런 짓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이 패러디 사진 파문 때는 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펄펄 뛰었는지 모르겠다.

이번 욕설극은 우리 정치의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날로 저질화하는 정치의 생생한 단면이기 때문이다. 17대 의원들은 유권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데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 의원들은 등원 후 정책을 연구하기보다 연극이나 음악행사 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초선 또는 젊은 의원일수록 더하다. 이런 식의 변화가 이들이 총선 때 외친 '정치를 바꾸겠다'는 다짐의 실천이라면 크게 실망스럽다. 이 같은 방법으로 정치인이 자신의 얼굴을 대중에게 보다 쉽고 빠르게 알릴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이는 바른 길이 아니다. 편법 포퓰리즘으로는 정치나 정치인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인기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문제다. 그런 발상이 정치를 더욱더 저질로 만든다. 국민이 그것을 보고 좋아할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인데 국민을 우습게 본 처사다. 세비 받고 하는 일이 고작 욕설 연극인가. 연극으로 집단적인 카타르시스는 얻을지 모르나 똑같은 반격을 불러 정치는 '저주의 굿판'으로 치달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