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예금보험公 '퇴출 금융사 임직원들 재산추적' 속앓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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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예금보험공사는 요즘 퇴출 금융기관 임직원의 재산추적을 놓고 고민에 빠져 있다.

대대적인 재산 추적조사를 해 공적자금을 최대한 회수하겠다고 큰소리쳤는데 막상 조사해보니 별로 건질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융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외부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준 대출이 많았는데 임직원이 모든 덤터기를 써야 하느냐는 항의에 말문이 막힐 때도 있다. IMF 체제라는 특수요인도 감안해야 한다는 항변도 있다.

◇ 늑장 조사〓지난 3~4월 금융감독위원회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 형사고발된 4개 퇴출은행 경영진 25명 가운데 16명이 지난해 하반기에 아파트 등 부동산 31건(68억원)을 부인이나 제3자 명의로 넘긴 사실이 드러났다.

더욱이 퇴출 종금.보험사는 감독당국이 부실책임에 대한 검사를 해놓고도 이를 관리인에게 통보만 하고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아 재산도피를 도와준 셈이 됐다.

예금보험공사가 퇴출 금융기관 임직원에 대한 재산추적에 나선 것은 올 하반기 들어서다. 더구나 퇴출된 17개 종금사 가운데 8개사 36명에 대한 조사만 마무리해 소송을 냈을 뿐 나머지 금융기관은 이제 조사착수 단계다.

예금보험공사도 할 말은 있다. 현행법상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이라도 퇴출되기 전은 물론 퇴출 이후에도 채권단이 예금보험공사를 감사위원으로 선임할 때까지는 조사할 수 없게 돼있다는 것이다.

◇ 형평성 시비〓은행 이외 금융기관 부실은 대부분 대주주가 해당 금융기관을 사(私)금고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주주가 경영에 간섭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잡기 전에는 민사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게 예금보험공사측 설명이다. 결국 전문 경영인들이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퇴출 금융기관과 경영 정상화를 추진 중인 금융기관간 형평도 문제다. 퇴출 은행의 행장들은 줄줄이 형사고발되고 민사상 책임까지 지게 생겼는데 이보다 훨씬 많은 공적자금이 들어간 '제일.서울.한빛.외환.조흥은행 등'대형 부실은행의 전.현직 행장과 임원은 다른 금융기관의 임원이 될 수 없는 문책경고가 가장 엄한 징계였다.

조사대상 선정에도 고무줄 잣대가 적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퇴출 종금사의 한 간부는 "예금보험공사가 당초 80여명을 조사했다가 실세에 줄을 댄 사람은 빼고 배경없는 36명만 문제삼았다" 고 주장했다.

◇ 금융계 반발〓 "중소기업 가운데 신용이 완벽한 곳이 몇이나 됩니까.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독려하니까 대출해준 것이지요. 하지만 정부정책에 호응하다가 나중에 잘못될 경우 책임은 은행원들만 뒤집어쓸 판이니 몸을 사릴 수 밖에요. " A은행 대출계 朴모과장의 말이다.

C은행 여신담당 임원인 李모 이사는 "요즘 대출 한 건 해주고 나면 혹시 부실이 되지 않을까 밤잠을 못 이룬다" 며 "재산이라곤 아파트 한 채와 퇴직금 성격의 우리사주인데 잘못했다간 그것조차 날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다" 고 한숨지었다.

◇ 시급한 제도개선〓금융기관 임직원의 반발을 줄이면서도 재산추적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초동 대응이 빨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무리한 재산추적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구본천 박사는 "외국처럼 위험에 대한 보상체계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잘못에 대한 책임만 추궁한다면 신용경색이 심화될 우려가 크다" 며 "금융기관 임직원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은 대출 커미션을 받는 등 위법행위로 제한하는 게 바람직하다" 고 밝혔다.

정경민.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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