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5. 시 - 문태준 '하늘궁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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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화가 하늘궁전을 지어놓았다
궁전에는 낮밤 음악이 냇물처럼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생사 없이 돌옷을 입고 평화롭다

목련화가 사흘째 피어 있다
봄은 다시 돌아왔지만 꽃은 더 나이도 들지 않고 피어 있다
눈썹만 한 높이로 궁전이 떠 있다
이 궁전에는 수문장이 없고 누구나 오가는 데 자유롭다

어릴 적 돌나물을 무쳐먹던 늦은 저녁밥때에는
앞마당 가득 한 사발 하얀 고봉밥으로 환한 목련나무에게 가고 싶었다
목련화 하늘궁전에 가 이레쯤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전문, '문학사상' 2004년 5월호 발표>

◇ 약력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미당문학상 후보작 '하늘궁전' 외 11편

시인 문태준씨는 시 쓰는 일을 밀가루 반죽을 치대는 일에 비유했다. '시 반죽'인 만큼 밀가루와 물 대신 그의 생각과 몸이 재료로 들어간다. 문씨는 "시 한편을 써내고 나면 어떤 거대한 손이 나라는 존재를 마구 주무른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 순간 지극한 기쁨을 느끼기 때문에 시를 오래오래 쓸 수밖에 없을 거라는 각오랄까, 희망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문씨가 독자들에게 소개하기로 한 '하늘궁전'은 물론 잘된 반죽 중 하나다.

문씨는 "아주 어렸을 때 시골집 들마루에 식구들이 모여앉아 저녁 먹으며 바라봤던 목련꽃을 어른이 된 후 어느날 한참을 바라본 적이 있다. 그 경험이 시 착상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두 목련꽃 사이에는 건너뛸 수 없는 시간적 간격이 배경처럼 깔려 있다. 어느덧 문씨는 30대 중반이 됐다. 늙고 쇠해가다 마침내 죽고 말 것이다. 문씨는 "삶은 고통스럽고 소멸하는 세계라는 인식은 내 시의 땅바닥 같은 것"이라고 밝혔다.

소멸.죽음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질수록 환생과 영원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열망은 간절해진다. 그런데 꽃은 나이를 먹기만 하는 나무와 달리 때마다 새롭게 피면서 새로운 목숨을 부여받는 존재다. 문씨는 "꽃이 환생의 상징, 소멸이 없는 존재로 생각되었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런 꽃이 만발한 세상은 영원성에 닿아 있는 불멸의 세계, 음악과 같은 그런 세계다.

어둠에 대한 인식을 통해 문씨는 밝은 것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문씨는 "내게는 밝은 것을 보는 재주가 없는 것 같다. 그늘을 보는데 익숙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승에서 머물다 다른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스스로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정효구씨는 "사실 만개한 꽃에서 생명의 완전함, 생명의 신비를 읽는 눈은 새롭지 않다"고 말했다. 많은 시인이 쓰고 있다는 것이다. 정씨는 "문태준 시의 특장은 이미지를 형상화하거나 시를 구성할 때 우리의 살로 느끼게끔 하는 언어, 조작된 언어가 아니라 자기 삶의 뿌리에서 우러나오는 언어를 구사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하늘궁전'에서 꽃이 만개한 목련나무를 "한 사발 하얀 고봉밥"으로 표현한 게 대표적이다. 정씨는 "그 같은 이미지는 살에 팍팍 감기는 것 같다. 이미지와 나 사이의 거리가 없어진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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