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체중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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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호 15면

10월 가을, 하늘이 맑고 높다. 힘들었던 여름을 보내고 한결 지내기 좋아진 계절을 맞아 입맛도 좋아진다. 바야흐로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천고마비’는 가을의 풍성함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나타나 있는 고사성어라고 한다. 옛날 중국은 흉노라는 기마민족의 침입을 번번이 받고 있었다. 가을이 되면 말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먹이를 많이 먹어 살이 찌게 되는데, 바로 이 시기에 흉노족들이 월동준비를 하기 위해 쳐들어오곤 했다고 한다. 천고마비란 중국인들에게 전쟁의 시기가 다가왔다는 경고의 말이었던 셈이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과체중이나 비만으로 고민하는 분들께는 체중과의 싸움의 시기가 다가왔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가을이 되면 사람도 살이 찌는 게 과학적으로 맞는 얘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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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지면 음식이 부족하기 쉬운 후진국 사람들은 가을이나 겨울이 온다고 해서 살이 찌지는 않는다. 그러나 음식의 공급이 계절에 관계없이 충분한 선진국의 성인들은 겨울에 실제로 체중이 1kg 정도 증가한다. 무엇보다 열량 섭취가 가을에 많아져서 11월 초에 최대가 되며, 봄에 낮아져 5월에 최저가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육체적인 활동은 겨울에 가장 적고 봄에 가장 많으며, 가만히 안정을 취하고 있을 때의 에너지 소모량인 기초대사량도 봄·여름에 높고, 겨울에 낮다. 결국 열량 소모 대비 열량 섭취가 가을~초겨울에 가장 높아져 체중이 증가하는 것이다.

어린이의 경우도 계절별로 성장에 차이가 난다. 여름에는 무덥고 습한 날씨로 인해 입맛이 떨어져 성장 발달이 늦어지고, 가을·겨울이 되면 입맛이 돌아오면서 성장 발달이 좋아진다. 그러나 이러한 계절적인 변화는 단순히 온도변화 때문만이 아니라 다양한 원인에 의해 생기는 것 같다. 미국 캘리포니아처럼 외부 온도의 변화가 심하지 않은 곳에서도 체중이 겨울에 늘고 여름에 감소하는 계절별 변화를 보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결과, 영양 공급을 반영하는 혈중 중성지방 농도도 가을에 최대로 높아진다. 또한 젊은 남성들을 추적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도 6, 7월에 비해 12, 1월에 평균 7.6mg/dL 더 높았다. 봄에는 탄수화물 섭취가 많아지고 가을에는 지방 섭취가 최대로 많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이 가을·겨울에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가 높아지는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

또한 간에서의 콜레스테롤 합성 효소의 활성도가 낮보다 밤에 4배 정도 더 높아 밤 사이에 많은 콜레스테롤이 체내에서 합성되는데, 늦가을~겨울의 기나긴 밤이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높아지게 하는 것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겨울을 나기 위해 가을에 체내의 지방 축적을 증가시키던 동물의 습성이 인간에게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리적인 변화 이외에도 가을에 해가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면서 우울증이 생기기 쉬운데, 우울증이 있어도 단것이 자주 입에 당기고 수면이 증가해(운동량이 감소해) 체중이 증가할 수 있다.

날이 추워지면 체중이나 콜레스테롤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늦가을, 겨울엔 혈압도 오르고 혈전(血栓) 생성도 증가한다. 이래저래 날이 추워지면 체중·혈압, 그리고 콜레스테롤의 관리에 더욱 신경써야 하는 것이다. 규칙적인 운동, 저염식, 과식하지 않기, 육류지방 섭취 제한에 노력을 기울이고, 고혈압과 고지혈증의 치료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뇌졸중으로 쓰러져 ‘마비(痲痺)’가 생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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