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노출 콘크리트 고집, 그 위에 변화를 짓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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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호 31면

“건축은 매주 새로 발명되는 것이 아니다.” 현대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로에의 말이다. 건축은 여타의 예술에 비해 그 변화 속도가 느리다. 하지만 건축, 그리고 건축가는 반드시 변해야 한다. 건축가의 성장 과정에는 몇 번의 고비가 있다. 먼저 건축의 기본을 배우느냐. 그리고 배운 건축을 넘어 자신의 것을 만들 수 있느냐. 끝으로 건축가로 성공해 이름이 났다 하더라도 세상에 익숙해진 자신의 건축을 뛰어넘어 원숙한 경지에 이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본 건축가 김인철

건축가 김인철과 그의 세대는 대부분 ‘독학’으로 출발했다. 건축 수련의 기반이 취약한 데다 유행과 혁명을 분간하기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환골탈태한다는 것은 건축가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미 설계에서 손을 뗀 동년배의 많은 건축가와는 달리 우리는 김인철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그를 젊은 건축가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그러한 힘이 있는 것은 일관성과 변화의 균형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새로운 것을 터득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예전부터 공부했던 것을 지켜 나간다. 젊었을 때의 시대에 함몰되지 않고 그 당시 추구했던 주제를 꾸준히 키워 나가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를 이끌어 간다.

그는 20년 넘게 노출 콘크리트를 자신의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 건축에 대한 꾸준한 학습과 통찰을 통해 ‘없음의 미학’을 화두로 작업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디자인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건강한 모더니스트로서 공간을 건축의 핵심 가치로 두고 있다. 신비주의에 흐르고, 지나치게 무거울 수 있는 이런 주제가 성숙해진 그의 작품 세계와 작가적 인품을 통해 여유롭고 새롭게 다가온다. 그의 건축을 통해 절제의 고통이 아니라 무위의 즐거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환골탈태의 과정은 지난하지만 그 생명력의 바탕이 무엇인지는 명백하다.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김인철은 어반 하이브의 콘크리트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고층 벽체 구조에 대해 공부했다. 도쿄에 비슷한 개념의 건물을 설계한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도요 이토를 찾아가 자문을 했다. 유사한 개념의 건물들과 얼핏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어번 하이브는 국내의 건설 기법, 강남의 도시적 현실, 작가 특유의 감각으로 어우러진 독특한 건물이다. 어디에선가 배움을 얻고, 또 변신의 과정을 통해 새로워져 다른 이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것, 그것이 좋은 건축가이며 좋은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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