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다양한 것들의 어울림, 단풍의 미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을 타고 푸름으로 가득 차 있던 산하가 오색 찬연한 비단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말 그대로 화폭에 담긴 풍경화다. 우리 산야에는 4500여 종이라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사계절이 뚜렷한 덕분에 이들이 담아내는 아름다운 단풍의 색상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가을의 초입에 들어서면 설악산에서 시작된 단풍은 하루에 20여㎞씩 남하한다. 땅끝 마을까지 도달하는 데는 대체로 한 달 남짓 걸린다.

식물 생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나무는 가을철이 되면 월동준비를 하기 위해 나뭇잎을 떨어뜨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여름 동안 잎 속에 꽉 차 있던 엽록소 때문에 보이지 않던 카로틴·크산토필 같은 색소가 나타나고 안토시아닌이 생성돼 나뭇잎의 색이 붉게 혹은 노랗게 보이게 된다. 이렇게 해서 물든 나뭇잎 색의 조화가 가을 산의 단풍이다.

단풍이 든 가을 산은 우리가 살아온 삶의 여정과도 비교될 법하다. 생명체의 시작과 끝은 그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젊은 날 사회의 구석진 곳에서 주어진 일들을 향해 젊음을 불태웠기에 오늘의 현실이 있는 것이다. 때로는 노력한 만큼 얻은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이는 인간사회나 생존경쟁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한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모습도 단풍 색깔만큼이나 다양한 것 같다. 부족함이 흠이 돼서도 안 되지만, 넉넉함이 시기의 대상이 돼서도 안 된다. 자연 속에서 보는 단풍잎의 조화처럼 우리 사회도 서로 나누고 보듬으면서 사랑으로 함께 헤쳐 나갈 때 그 모습은 가을 산의 단풍처럼 아름답게 투영될 것이다.

변광옥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