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갖는 한국화가 정종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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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화가 정종미(42)씨는 '종이부인' 이라는 스스로 지은 별명을 갖고 있다.

'종이부인' 이 사랑에 빠진 종이는 다름 아닌 닥종이와 장지 같은 전통 한지다.

한없이 부드러운 포용력을 자랑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어느 종이보다 질긴 특유의 성질에서 바로 자신의 속에 있는 것과 같은 '여성성' 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종이부인' 은 20일부터 서울 종로구 견지동 동산방화랑에서 선보이는 그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종이에 매력을 느낀 건 미국 유학시절. 어느 종이작업 스튜디오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그 곳에 모여든 세계 각국의 종이를 접할 기회를 가졌다. 일본 종이가 각광을 받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그는 자연스레 한지를 떠올렸다.

"회화의 재료로 종이가 얼마나 풍부한 표현력을 가졌나를 실감하게 됐습니다. 특히 우리 한지는 물에 불려져 퍼진 모양새를 보면 마치 여성의 피부처럼 결이 고와요. 물기가 마르면 응집력이 강해져서 물감 흡수도 잘 하지요. 귀국한 후부터 한지가 갖는 성질을 연구하고 이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업을 지향하게 됐습니다. " 그는 붓을 여간해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일단 한지를 불린 후 발에 건져 놓고 물기가 빠질락말락할 때 액션페인팅을 하듯 물감을 흩뿌리는 식이다.

선도 몇 개만 붓에 먹을 묻혀 긋는 정도다.

때론 지방을 돌아다니며 채취해온 황토도 바른다.

또 은은한 색을 내기 위해 종이에 콩기름이나 들기름을 먹여 쓴다. 이것도 기름칠을 하고 나서 작업실 천장에 매달려 3~4년의 세월을 보내야만 종이부인의 낙점을 받을 수 있다.

요컨대 그는 각종 전통 재료의 실험을 통해 질박한 우리만의 정서를 추구하려 하는 것이다.

그가 그리는 '부인' 들은 창호지에 비치는 그림자처럼 보일 듯 말 듯 여린 존재들이다.

그는 "여리고 온화하지만 다가갈수록 강인함을 느끼게 되는 여성의 특징을 작업을 거듭할수록 실감한다" 며 "한지의 따스한 정감을 보는 이들과 나눠 갖고 싶다" 고 말했다.

정씨는 여성 화가의 활약이 저조한 한국화단에서 어엿한 중견작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서울대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9일까지. 02-733-5877.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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