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국민 공용 젓가락 디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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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선 박사가 직접 디자인한 끝이 두갈래로 나뉜 면류용 젓가락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오종택 기자]

‘한·중·일 생활 문화, 일상에서의 휴(休)’. 서울 디자인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잠실 종합운동장 우측 출입구 1층 에어돔 안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 주제다. 국민대 동양문화 디자인연구소(소장 최경란 교수)가 주최하는 행사다.

이 전시회 한 켠에 작지만 유독 관람객이 몰리는 부스가 있다. 이 부스엔 젓가락만 60여 벌이 놓여 있다. 모두 젓가락인데 모양이 다 다르다. 끝이 뽀죡한 것, 둥근 것, 세모난 것, 네모난 것부터 두 갈래로 갈라진 것, 젓가락 마디에 홈이 파인 것까지 있다. 같은 디자인이어도 스테인리스·플라스틱·나무 등 재질이 다른 것도 있다. 지난달 말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박사학위(조형학)를 딴 정미선(30) 박사의 ‘국제화 시대에 맞는 한·중·일 식도구 제안’ 전이다.

선화예고와 국민대 공업디자인학과-테크노디자인 대학원(석사)을 졸업한 정 박사는 5년 전 박사 과정이 신설된 무사시노미술대으로 유학을 가 이 대학의 2호 박사, 한국인 1호 박사가 된 이다. 이 대학은 도쿄제국미술대이 전신으로 일제 강점기 이중섭·이쾌대·장욱진 화가 등이 공부한 곳이다.

대학원 시절부터 식생활 환경에 관심을 가진 그는 박사과정을 밟던 중 한·중·일 간 식사 도구를 비교연구하게 됐고, 자연스레 젓가락에 맞닿게 됐다. 세 나라 모두 젓가락을 사용하는데, 나라마다 젓가락이 닮은 듯 다르다는 것이다.

“중국은 멀리 있는 음식을 집어 먹는 습관 때문에 길고, 일본은 식사 반경이 작으니 잘 조작할 수 있는 젓가락이 필요해요. 우리는 반찬을 밥 위에 떨어뜨리지 않고 잘 가져다 놓는 것이 중요하죠. 이런 차이 때문인지 젓가락도 차이가 있더군요.”

그의 연구는 바로 이런 차이점에서 시작됐다. 세 나라 국민이 편하게 쓸 수 있는 한 종류의 젓가락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젓가락이라면 서양인도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한국의 두부나 일본의 라면을 집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서양인이 낑낑대는가.

“나무에 홈을 파면 두부를 깨지지 않게 집을 수 있고요, 특히 금속을 이용하면 부드러운 반찬을 집기 쉬워요. 젓가락 끝을 두 갈래로 나눈 건 라면이나 칼국수 등 면류를 먹을 때 아이들도 쉽게 쓸 수 있어요.”

그가 개발한 젓가락 디자인은 120여 종에 이른다. 그는 한국과 일본에서 이들에 대한 특허와 실용신안 등록을 준비 중이다. 학교나 연구소에 일자리를 얻고 싶다는 그는 앞으로도 식생활 환경 디자인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젓가락은 밥을 먹으면서 대화를 이끄는 매개체가 될 수 있어요. 서양인이 한식과 함께 우리의 젓가락까지 즐길 수 있다면 진정한 한식의 세계화도 이뤄지지 않을까요.”

이가영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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