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문희 '낯선 길'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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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살아갈수록 길은 낯설다.

뒤돌아다보면 추억은 굽이진 몸을 숨기고 있다.

걸을 때마다 앞길은 자주 끊어져 있었고

끊어진 길을 잇다가 보면 뒷길도 끊어져 있었다.

문득 길의 끝이 바다에 묻힐 때

먼 수평선에 닿을 수 없는 길이 보였고

닿을 수 없는 길이 산에 밟혀 있을 때

깜깜한 동굴에 몸을 감추는 길의 옷깃이 보였다

- 김문희(45) '낯선 길' 중

삶이란 조금씩 익숙해지는 일상의 관습 안에 담겨 있다. 하지만 이런 삶의 더 깊은 곳을 보게 되면 그것이 내가 살아오는 삶이라 해도 아주 낯선 것으로 된다.

여기 길에 대한 수려한 노래가 있다. 그것은 삶이다, 인생이다 하고 인생론을 펼치는 게 아니라 길의 회화적인 광경을 펼쳐 그 길의 행방과 단절.소실 등을 통해 그 길의 영원한 연속을 그려낸다. '길의 옷깃' 이라니, 멋진 표현이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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