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전력시장 경쟁이 활성화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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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2001년 한전에서 6개 발전자회사와 전력거래소가 분리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배전분할 단계에서 노조의 반대에 봉착한 전 정부가 추가 작업을 보류함으로써 지금까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은 채 한전의 분할을 지원하기 위한 ‘전력산업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이 올해 말이면 자동 폐기된다. 이렇게 되자 일각에서는 한전으로 다시 통합 복원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전력산업의 환경은 많이 변했다. 또 세계적 시대 조류로 자리 잡은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은 앞으로의 에너지산업 틀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세계 각국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사용의 효율 제고, 에너지 소비절감의 3대 노력을 강화할 것이다. 전력산업도 예외일 수 없으므로 이 틀에 맞는 구조를 찾아야 한다.

태양광 발전 단가가 일반 발전 단가의 10배에 이르는 현 단계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은 일반 발전과 경쟁할 수 없다. 비용이 꽤 소요되는 절전형 전기기기 개발 역시 절전으로 얻는 이익이 그만큼 커야 활성화될 것이다. 전력소비자들도 이익이 눈에 보여야 절전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따라서 신재생에너지 발전과 전력효율 제고에 대한 지원금 지급은 태양광 발전과 절전형 개발을 자극할 게 분명하다. 실제로 정부의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 정책은 보조금 지급과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의무제 등으로 편성되어 있다.

하지만 전기요금이 지금보다 10배 이상 오른다면 보조금이 없어도 태양광 발전은 살아난다. 사람들은 절전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고, 전력기기 생산업자들은 절전형 개발에 몰두할 것이다. 요금을 한꺼번에 10배로 올릴 수야 없지만, 유가가 조금만 올라도 원가회수가 불가능해지는 전력요금을 항상 원가 이상 되도록 보장만 해주더라도 보조금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전기요금이 공공요금으로 남아 있는 한 정부는 거스를 수 없는 정치적 압력 때문에 요금을 함부로 인상하지 못한다. 고유가로 한전이 엄청난 적자를 겪을 때도 정부는 눈치만 보고 있었다. 전기요금을 정부가 책임지는 현 체제에서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의 추진동력은 정부 보조금뿐이다. 그러나 이는 한계가 있다. 보조금의 주요 재원인 전력산업기반기금은 한전 수입의 일정 부분으로 동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조금이 더 필요하다면 그 돈은 정부예산에서 나와야 하는데 이 역시 쉽지 않다. 태양광발전 파동에서 보았듯이 경제위기관리로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있는 지금, 재정건전성이 위협받으면 추가적인 추진동력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전기요금을 공공요금으로 유지하는 현 체제에서는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 추진동력은 조만간 시들고 말 것이다.

해법은 하나뿐이다. 그동안 보류했던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완결하는 것이다. 경쟁이 활성화되고 전기요금이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체제를 바꾸는 것이다. 시장은 항상 전기요금을 원가보다는 높게 결정할 것이고, 정부는 요금에 책임질 필요가 없다. 캘리포니아 전력 대란 이후 세계의 전력시장은 더욱 더 정교한 모습으로 발전했고 이제는 구조개편의 후발주자인 일본조차 우리보다 앞서 가고 있는 실정이다.

마침 제주도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한 스마트그리드는 녹색성장 시대의 전력산업을 주도할 핵심 시스템으로서 발전사업자와 전력 소비자들에게 전력의 단가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스마트그리드의 등장은 전력시장의 경쟁 수용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다. 전기요금은 항상 원가를 회수할 것이고, 소비자는 비싼 시간대를 피하는 절전형 소비로 전력구입 비용을 줄여 나갈 수 있다. 이처럼 시대 조류는 전력산업에 본격적 시장경쟁을 도입하도록 촉구하는 상황에서 부상하고 있는 전력회사 재통합 논의는 너무나도 시대역행적이다.

이승훈 서울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