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日 각료의 리포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고대 중국 주(周)나라 때 군사(軍師)를 지내고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를 세운 여상(呂尙)은 흔히 태공망(太公望)으로 불린다.

선왕(先王) 태공이 흠모했던 여상을 주나라 문왕(文王)이 불러 태공망이라 칭하고 군사로 기용했던 것이다.

문왕의 뒤를 이어 무왕(武王)이 태공망을 불러 인재를 알아보는 방법에 관해 물었다. 태공망은 열다섯 가지의 인간형을 꼽았다.

것 같지만 어리석은 자, 온화하고 선량해 보이나 실은 도둑인 자, 공손해 보이지만 실은 오만한 자, 침착해 보이지만 성실하지 못한 자, 꾀를 즐기면서도 결단력은 없는 자, 착실한 것 같지만 신의가 없는 자…' 등은 기용해서는 안될 인간형이며, '어수룩해 보이지만 충실한 자, 과격해 보이지만 일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자, 위엄도 풍채도 보잘것없으나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하는 자…' 등을 찾아 등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왕은 생각에 잠기다가 그 식별방법을 물었다. 태공망의 대답이 재미있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 그 덕성(德性)을 은밀하게 관찰하는 방법이나 스파이를 붙여 알아보게 하는 방법은 극히 상식적인 것이지만 돈을 다루게 하여 청렴도를 관찰한다거나 미인계로서 몸가짐을, 술에 취하게 하여 그 취태(醉態)를 관찰하는 따위의 방법들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꽤 그럴 듯해 보이는 것이다.

왕이나 군주, 오늘날의 대통령이나 총리에게 어떤 자리에 어떤 사람을 쓰느냐, 곧 인사(人事)문제는 통치역량을 가늠할 만큼 절실하고도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인재의 식별방법에 대해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현인(賢人)들이 나름대로의 견해를 피력했다.

맹자(孟子)의 생각도 음미해볼 만 하다. "사람을 관찰하는 데는 눈동자가 제일이다. 눈동자는 사람의 마음을 덮어놓을 수 없다. 가슴 속의 생각이 올바르다면 눈동자는 맑고, 가슴 속의 생각이 그릇되면 눈동자가 흐려져 있다. 그 사람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면서 그 사람의 눈동자를 관찰한다면 어느 누가 사람됨을 숨길 수 있겠는가. "

하지만 통치권자가 제아무리 수단방법을 총동원해 인사에 만전을 기하려 한다 해도 무능한 자, 부패한 자, 사악한 자들은 곳곳에 끼어들게 마련이다.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가 새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새 각료들에게 포부와 비전에 관한 리포트를 제출하도록 했다는 소식은 그것이 인사와 관련한 최선의 방법이랄 수는 없다 해도 그런대로 쓸만한 발상이다.

우리는 인사에 앞서 그런 아주 기초적인 검증과정이라도 거치고 있는지 궁금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