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신탁 조기 구조조정] 구조조정 어떻게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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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투자신탁의 구조조정에는 다른 금융기관 정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투신사는 예금자보호 대상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공적자금을 직접 투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구조조정으로 생기는 손실을 투자자에게 모두 전가해버리면 주식.채권의 최대 수요처인 투신에서 자금이 빠져나가 시장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

채권시가평가제를 구조조정과 동시에 시행할 것이냐도 검토해야할 사항이다. 시가평가를 하지 않고 당초 제시한 수익률 보다 낮을 경우 손실을 투신사가 메워주는 관행이 지속되는 한 부실이 되풀이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막상 구조조정을 한다고 해도 풀어야할 과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구조조정은 ^부실규모를 실사하고 ^부실은 정리하고 자본은 확충한 뒤 ^정상화 여부를 판정하는 3단계로 이뤄지는데 각 단계마다 풀어야할 숙제가 많다.

◇ 부실실사 단계〓투신사 부실은 ^연계콜 등 투신사가 고객재산에서 빌려간 돈 ^대우 채권 ^리스채 등 대우채를 제외한 다른 부실채권 ^채권 평가손실 등 네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기존 6개 투신은 네가지 문제에 모두 해당되고 신설 투신운용사는 대우채권과 채권평가손의 두가지만 해당된다.

대우채권과 부실 非대우채권은 발행기업과 채권단간에 손실분담비율이 먼저 정해져야 한다. 예컨대 대우채권을 얼마로 평가할 것이냐는 결국 대우 부채에 대한 채무조정문제와 직결된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서울보증보험이 지급보증한 대우채권과 삼성자동차 회사채에 대한 해결방안도 포함돼야 한다.

일단 투신이 부담할 손실이 정해지면 다시 투신 운용사와 판매사(증권사)간 분담비율도 정해야 한다. 현재로선 수수료 수입 분담비율인 8대2가 유력하다.

투신(운용)사가 자체적으로 책임져야할 손실이 나오면 다시 투신과 투자자간에도 손실분담 원칙을 정해야 한다. 채권시가평가제가 시행이 안된 이상 당초 투신이 제시한 수익률을 전액 보장해야 한다는게 투자자 입장이지만 대우사태는 '천재지변에 가까운 사건' 이기 때문에 투자자도 일정부분 손실을 분담해야 한다고 투신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과거 실적배당형 은행 신탁상품의 경우 개인은 정보에 어두웠다는 점을 참작, 원금은 보상해줬지만 기관투자가는 손실을 떠안았던 전례가 이번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 부실정리.자본확충 단계〓은행의 경우 성업공사가 부실채권을 사줬다. 그러나 투신은 성업공사가 직접 사줄 수 없다. 이 때문에 나오고 있는 방안이 투신의 부실채권만 사주는 '배드펀드' 를 만들자는 것이다(신대식 한국투신 주식운용팀장). 배드펀드에는 성업공사나 한국은행 또는 산업은행 등과 투신.증권.은행 등 금융기관이 출자토록 한다는 복안이다.

대우채권을 70~80%정도로 할인한 새 채권으로 바꿔 정상 유통되도록 하되 새 채권은 은행이 보증을 서주는 방안도 있다. 금융연구원의 최공필 박사는 아예 투신의 부실자산을 은행 신탁계정에 자산이전(P&A) 방식으로 옮기자는 안을 내놓았으나 이는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자본확충의 경우 재벌이나 은행 계열사는 해당 재벌.은행이 책임지도록 하면 되지만 한국.대한 투신은 외자유치에 실패하면 정부가 책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투신은 예금자보호 대상 기관이 아니어서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증자하기는 어렵다. 결국 산업은행이나 한국은행을 통할 수 밖에 없는데 해당기관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할지가 변수다.

◇ 정상화 여부 판정 단계〓구조조정이 성공해 정상화되면 문제가 없겠지만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정된 투신은 어떻게 할 것이냐가 또다른 숙제로 남는다. 부실 투신사는 부채가 자산을 초과해 고객 예금을 회사자산으로 다 보상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한남.신세기투신 등은 억지로 기존 투신에 떠넘겼지만 지금은 그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 단계에서도 공적자금으로 해결할지 여부를 정해야 한다.

한편으로 이 단계에서 아예 투신업계를 재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펀드평가원의 우재룡 박사는 "투신사는 정리하되 투신시장은 살리자면 개방형 뮤추얼펀드를 빨리 도입하고 외국 자산운용사의 국내 진입 장벽을 풀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정경민.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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