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한국인 요리사 박성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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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뉴욕〓신중돈 특파원]유엔총회 기간 중 한창 바쁠 때면 최고 5개국의 정상들이 동시에 투숙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이 호텔의 주방에서 22년째 세계정상들의 입맛과 시각을 늘 신선하게 해주는 요리사 중 한 명이 한국인인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교포사회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일명 '야채 꽃예술' 의 1인자인 박성자씨가 주인공.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인 이것은 야채와 과일을 재료로 꽃바구니나 화병을 만드는 작업이다.

대파를 줄기 삼아 그 위에 무와 피망 등을 직접 칼로 깎아 생화처럼 만든 뒤 이쑤시개 등으로 고정해 꽃바구니를 만드는 것으로, 꽃으로 만든 꽃바구니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간다.

무를 자르고 파내 장미꽃 모양을 만들고 피망을 기술적으로 잘라내 튤립을 만드는 등 예술가적 자질이 있어야만 가능한 작업이다.

원래 주특기가 칵테일 파티용 안주준비였던 朴씨는 18년 전 국가원수들의 칵테일 파티시 테이블의 중앙이 뭔가 허전하다는 점을 파악했다. 그러던 중 빨간무를 이리저리 도려내 스마일 얼굴을 만들던 동료로부터 힌트를 얻어 朴씨가 시작한 것이 바로 야채 꽃예술이다.

힘들고 고달픈 작업이지만 하면 할수록 독특한 재미를 느껴 밤새는 줄 모르고 작업에 매진했다.

특히 각국 대통령이 주빈으로 등장하는 칵테일테이블에 올려지는 야채 꽃장식이 대견스러워 더욱 새 디자인 개발에 몰입했고, 지난 6월엔 '야채 꽃예술' 이라는 화보집 겸 매뉴얼을 출간했다.

"야채로 만든 꽃장식이라는 말을 못믿겠다며 장미 모양의 무를 뽑아 즉석에서 씹어 먹어보던 대통령도 있었습니다. 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 뉴욕방문 때는 정말 심혈을 기울여 야채 꽃장식이 올려진 칵테일 테이블을 준비했죠. 행사가 끝난 후 테이블을 아름답게 수놓아 줘서 고맙다는 칭찬과 함께 감사장을 받기도 했죠. "

미국생활 30년이 되는 朴씨는 그동안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독학과 노력으로 터득한 기술을 전수할 대상이 마땅치 않았던 것. 그렇다고 외국인에게 전수하자니 괜히 아깝고 탐탁지 않아 망설였다.

그러나 최근 朴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호텔업계로 뛰어든 한 한국 젊은이를 소개받아 기술전수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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