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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안정기금 '뒤탈' 걱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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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27일부터 투입된 채권시장 안정기금은 '채권 매입→금리 하락→투자자 이익' 이라는 선(善)순환을 이끌 것인가, 아니면 채권을 사들여도 금리가 오르는 악(惡)순환의 굴레에 빠질 것인가.

최대 20조원 규모의 이 기금에 돈을 대기로 한 은행 등은 '초대형 펀드' 가 짐만 잔뜩 지우고 자칫 '초대형 손실' 을 낼 수 있다고 우려하며 심한 속앓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11월 대란설' 을 잠재우기 위해 이 기금을 '급조' 한 금감원은 은행 등이 출자를 꺼릴 이유가 없다고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금리가 곧 꺾일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 첫날의 금리인하 효과=채권기금이 2조5천억원을 들고 채권매입에 나서면서 시장금리는 오전부터 일제히 내려갔다.

이 기금은 당초 27일 오후나 28일이 돼서야 매수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오전부터 시장에 들어와 회사채만 6백억원 어치를 사들였다.

이 기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자금시장에서는 회사채 금리가 지난 22일(전영업일)보다 0.62%포인트 내렸으며 국고채도 0.29% 포인트 동반 하락했다.

이 기금의 백경호 운용부장(주택은행 증권운용팀장)은 "금리를 내리기 위해 채권값을 더 쳐주지는 않았고, 실세 가격으로 매입했다" 며 "금리가 내리면 이 회사채 매입으로 이익을 볼 것" 이라고 말했다.

◇ 은행.투신권의 불만=한미.하나.외환.주택.국민은행 등의 외국계 주주들은 이 기금의 불량채권 매입이나 채권값 폭락에 따른 부실화를 우려하며 정부의 지급보증을 바라고 있다.

시중은행 임원은 "정부 입김이 거셀 경우 이 기금도 증안기금처럼 원본을 까먹을까 걱정" 이라며 "외국계 주주들은 이사회 결의도 없이 은행당 1조원 이상 출자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 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또 기금 출자로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지며 유가증권 투자한도를 지키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투신권에서는 이 기금이 흡수할 신용등급 BBB 이상의 우량채권 금리는 떨어지겠지만 매입대상에서 제외된 BB(투자부적격)이하 채권의 금리는 오르는 금리양극화 현상이 초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 기금이 우량채권만 흡수할 경우 투신사 공사채형 수익증권에는 투기등급 채권만 남게 돼 대우 채권편입 문제와는 또다른 환매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전망과 과제=금감원은 27일 두차례에 걸쳐 브리핑을 갖고 채권기금 출자와 관련된 은행권의 문제제기를 반박하고 이날 기금의 매입규모.내용 등을 설명하는 등 기금의 순항을 위해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시장참여자들은 이 기금이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효과만 있을 것이라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박성진 신영증권 채권조사팀장은 "당분간 지표금리는 다소 하락할 것으로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 낙관하기 힘들다" 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금융노련은 최근 "채권안정기금이 증안기금처럼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금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부담하라" 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때문에 한 시중은행장은 20조원 펀드를 여러개로 쪼개 경쟁을 시키고 가동 시한도 당초의 2년에서 1년으로 줄었지만 더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투신사 관계자는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채권기금이 사들이지 않는 정크(쓰레기)본드의 처리를 전담할 별도의 기금을 마련하든지 공적자금 투입 등 해결책을 써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영렬.임봉수.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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