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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식기반 경제로 가는 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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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9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게리 베커 교수는 최근 부동산에 세금을 매김으로써 사회적 형평을 개선하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제는 지식과 기술과 같은 무형의 지적 자산이 가장 중요한 소득의 창출원이 되었기 때문에 양질(良質)의 고급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는 편이 사회적 형평 개선에 훨씬 더 유익하다고 본 것이다.

베커 교수의 견해는 다가오는 21세기의 소득 창출은 무형자산에 더 좌우됨을 정책 당국이 직시하라는 메시지다.

그의 말대로 21세기는 부가가치 창출 능력이 인간의 창조적 지식에 기반하는 지식기반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식기반 경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또 이를 촉진하는 정책들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정책들을 보면 정보네트워크의 구축과 PC의 보급 등 대부분 물적인 인프라의 구축에 국한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러한 물적인 기반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가 지식기반 경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물적인 기반의 구축보다도 오히려 의식과 문화의 개혁이 시급한 실정이다.

첫째, 지식을 하나의 상품으로 인정하고 그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풍토가 정착돼야 한다. 예컨대, 아무리 간단한 집수리라도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수긍하면서도,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았을 경우에 자문료를 지불하는 것에 대해서는 서로가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지식이 가치 창출의 원천이 되려면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자문에 대해 자문료를 자연스럽게 치를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최근 몇몇 기업에서 전 임직원에게 사내 아이디어 등록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러한 체계를 통해 개인 서랍 속에 묻혀 있는 지식들이 밖으로 나와 생산 과정에 원활히 접목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지식근로자가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업에 대한 기여도보다 오래 근무한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연공서열제가 조직의 안정에 매우 유익하지만 때로는 지식기반 경제의 이점을 살리지 못할 수 있다.

조직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보상을 차별하는 성과급제는 지나친 평등주의 의식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조직이 꼭 필요로 하는 인재를 바깥에서 스카우트하려면 냉소적인 분위기를 이겨내야 한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 조직에 합류해 조직의 발전이 이뤄지고 이로 인해 내게 돌아오는 경제적 보상이 이전보다 더 커진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셋째, 모든 분야에서 먼 장래를 생각하는 미래형 사회로 가야 한다. 현실 문제에 매달리고 빠른 성과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지식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며, 미래에 대한 준비가 부실해 새로운 변화에 늘 허둥댈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는 도시계획을 해서 실행하는 데 2백년까지도 고려한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 도로수요를 잘못 예측해 4차선을 닦은 지가 얼마 되지 않는데도 확장공사를 다시 하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도로가 만들어진 곳에서 확장공사를 할 경우 토지 수용을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이처럼 단견적인 경제행위는 늘 크나큰 대가를 수반한다.

넷째, 지적재산권이 철저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의욕이 샘솟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나 일본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지적재산권 보호수준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

끝으로, 지식경제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며 오히려 지식경제화에 수반될 부정적인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지식경제에서는 그 속성상 남들과 다른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지나친 고수익 고위험의 추구가 빚어질 수 있는데 이는 철저히 경계돼야 한다.

또한 새로운 첨단 지식산업을 강조하다가 자칫 기존 제조업이 디디고 설 땅을 없애는 우(愚)를 범해서도 안된다. 그리고 다양한 새로운 전문지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모든 사람에게 충분히 제공해 지식의 격차가 심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정보인프라에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또 이용할 수 있도록 정보인프라 이용료의 인하와 교육강화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정순원 현대경제연구원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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