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직도 이런 행정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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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정감사를 앞두고 정부 각 부처와 산하기관들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들을 보면 어이없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은 국민연금 가입과 자영업자 소득 상향신고를 독려한다는 명목으로 인건비.홍보비를 4백2억원이나 썼지만 실적은 없다시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보통신부 산하 무선국관리사업단은 이동전화나 기지국 관련 검사.수수료를 과다하게 거둔 것도 모자라 이 돈으로 부동산 임대업까지 벌였다고 한다.

사기업이라면 이런 유의 비효율과 일탈(逸脫)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국민세금을 어떻게 알기에 이토록 방만할 수 있는지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비슷한 사례들이 해마다 되풀이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도 공기업들이 임직원에게 거액의 명예퇴직금을 선심 쓰듯 지급해 사회문제가 됐고, 정부가 '소(牛) 전산화사업' 에 2백70여억원을 낭비했다고 해서 국민적 분노를 사기도 했다.

그나마 국정감사 제도가 있기에 예산과 공적자금의 한심한 운용 사례들이 사후에라도 밝혀질 수 있었다고 자위할 수는 있다.

그러나 드러난 사례들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그런 위안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무사안일과 비리는 얼마나 많을지에 무게가 쏠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내년에는 국민 1인당 세금부담액이 사상 최초로 2백만원을 넘어설 전망이고 정부도 연 3년째 적자예산을 편성해놓은 판국이다.

우리가 보기에 기본적으로 정부와 산하기관.공기업들은 국민세금을 너무 안이하게 여기고 있다.

게다가 지나치게 경직된 업무자세로 인해 일단 방침이 정해지면 효율성이나 부실 요인은 따질 것도 없이 있는 돈을 다 쓰고 보자는 식이다.

행정에서의 '경영마인드' 가 구호로 등장한 지 오래인데도 주먹구구식 구태가 여전히 판치고 있다.

상급기관이 감독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않는데다 사후제재마저 솜방망이인 탓에 관련 공직자들이 예산을 우습게 여기게 된 면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번 국회제출 자료에서 밝혀졌지만 택지개발예정지구의 땅을 구입했다가 감사원에 적발된 토지공사 직원 14명 중 중징계 처분은 겨우 한명에 그쳤다지 않은가.

중앙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방만한 예산운용도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광역단체의 빚이 3년반 전보다 30%나 늘어난 16조8천여억원에 달하는데도 각 지자체들은 새 천년 행사에 경쟁적으로 거액의 예산을 편성했다고 한다.

중앙정부가 적절한 감독.조정기능을 수행했다면 이같은 상황이 빚어지겠는가.

중앙.지방정부와 산하기관들은 지금부터라도 자세를 일신해야 한다. 또 이미 드러난 각종 의혹과 방만한 운영사례들은 내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 철저히 파헤쳐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서울시의 허파에 해당하는 북한산에 대규모 위락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나 세우는 한심한 행정수준은 앞으로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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