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관계 해칠 빌미돼선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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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방한 중인 자칭린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고구려사 왜곡' 문제와 관련, 자칭린(賈慶林) 정협 주석을 통해 "이 문제로 양국 관계 훼손을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해 와 난마처럼 얽혀있던 이 문제가 해결의 전기를 맞을지 주목받고 있다.

자 주석은 27일 노무현 대통령을 찾아 인사를 나눈 직후 "후 국가주석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며 봉투에서 A4 용지 한장에 빽빽이 적어 온 서류를 꺼내 읽었다. 후 주석은 이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한국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좋은 이웃이자 파트너가 되고자 한다" "중.한 관계가 오늘 수준까지 발전한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우리 양측은 이를 함께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중.한 관계는 '고구려 문제'로 일정한 영향을 받았다"며 "나와 중국 정부는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후 주석은 구체적 해법을 제시하진 않았지만 양국이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견지에 서서 '충분한 지혜'를 갖고 '서로의 관심사'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 주석도 향후 문제 해결에 있어 중국 정부의 '성실'과 '책임'을 거듭 강조했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처음으로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양국 관계를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뚜렷이 표명한 것은 큰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서열 1위(후 주석), 4위(자 주석) 등 중국 수뇌부가 구체적 해법을 내놓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며 "그러나 양국 관계를 훼손하지 않고 문제를 적절히 해결한다는 원칙은 향후 외교당국의 실무협상, 중국 지방정부의 입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이 문제가 양국 간에 논쟁거리로 제기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한 참모는 "대통령이 외국 지도자와의 만남에서 '매우 유감'이란 표현을 쓰는 것은 가장 강도 높은 문제 제기의 수위"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에 대한 일종의 압박이었고 이런 정부의 '한 목소리' 기조는 사전에 치밀히 조율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지도부의 전향적인 해결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의 고구려사 복원 문제, 내년 중국 교과서 개정 등의 불씨가 남아 있어 결론은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훈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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