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세기 마지막 정기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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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제 개회한 15대 마지막 정기국회만큼 시기적으로 의미가 깊고 주요현안들이 산적한 국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상대로라면 의원들은 이번 국회 회기 중 상당기간을 할애해 지난 한세기 역사나 우리의 헌정사를 국회 차원에서 정리.평가하고 새 천년의 국가 및 국회상 (像) 을 제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불행히도 되어가는 모양새는 이런 격조 (格調) 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렇다면 정치개혁.민생안건 등 쌓여 있는 주요현안들이라도 말끔하게 처리해야 할텐데 신당.제2창당 작업이나 총선바람에 휩쓸려 15대 국회가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일마저 실패할지 모른다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우려다.

여야는 이미 정기국회 전부터 인사청문회 등에서 사안 자체보다는 다른 현안과의 연계여부를 놓고 티격태격했다.

야당이 청문회 대상을 양보하니까 이번에는 여당이 일정상 불가능하다고 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벌써 총선바람이 부는 터에 이런 속보이는 정략까지 가세하면 이번 국회의 결과는 뻔하다.

올해초 같은 날치기 법안통과 - 국회파행 사태가 다음 세기까지 이어진대서야 말이 되는가.

우리는 우선 인사청문회와 여야간 거의 합의가 이뤄진 특검제 도입문제부터 회기 초반에 매듭지을 것을 촉구한다.

특히 여당은 대선 공약이기도 한 이들 문제를 다른 것과 연계시키지 말아야 한다.

예컨대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 있는 선거구제 변경 문제를 여당이 다른 사안과 묶어 처리하려 한다면 국회가 원만히 돌아가겠는가.

93조원에 달하는 예산안도 이번만큼은 국회에서 꼼꼼히 따져 총선용 선심 여부 등을 가려내고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법 통과 지연으로 애써 쏘아올린 위성이 돈만 뿌리며 헛돌고 있는 통합방송법, 의료보험 통합문제가 걸린 국민건강보험법, 금융소득종합과세 실시시기 등 세제개혁안, 인권법 등 다른 주요현안들을 생각하면 이번 정기국회는 매일 밤을 새워도 모자랄 지경이다.

우리는 여야가 경쟁적으로 15대의 마지막 국회를 생산적으로 운영하고, 그 성과를 놓고 내년 총선에서 심판받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국민 입장에서도 이번 정기국회 진행과정을 세심하고 엄격하게 살핀 뒤 의원 개개인과 소속정당의 잘잘못을 총선 투표때 정확하게 반영하는 주인의식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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