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북한 편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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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호 35면

중국은 북한 편이다. 최소한 안보전략 차원에서는 그렇다. 원자바오 총리의 지난주 북한 방문을 지켜보면서 다시 확인하게 된 생각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 체제의 생존이다. 그리고 이런 전략적 목표를 위해 돈이 좀 들더라도 북한에 경제원조를 제공하는 것은 중국이 얼마든지 감내할 용의가 있는 일이고, 이미 오랫동안 실천해 온 것이다. 심지어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다 해도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북한 체제를 흔들 만큼의 압력을 넣거나 제재를 가할 용의가 전혀 없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통과에 참여한 것도 미국과 국제사회를 의식한 제스처였을 뿐이다.

북한의 지난 5월 제2차 핵실험 이후 한국과 미국의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는 북한의 무모한 행동이 중국의 지도자들을 화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중국 내부에서도 대(對)북한 정책을 심각하게 재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설이 나돌았다. 중국의 일부 전문가조차 그런 설을 뒷받침하는 분석을 내놓았다. 북한이 지난 4월 다단계 로켓을 발사한 이후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직접 북한의 자제를 주문했는데도 5월에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중국의 체면을 구겨 놨고 따라서 중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훨씬 강경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런 설들은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을 통해 모두 낭설이었음이 밝혀졌다. 문제는 이런 설들이 애초에 나올 수 있었고 널리 유포됐다는 데 있다. 중국과 북한 간의 특수 관계 여부를 떠나 한반도가 동북아 세력 균형 측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조금만 살펴보면 중국이 북한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자명해지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이 붕괴하고 남한 주도의 통일이 이뤄져 한·미 동맹군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자신들과 대치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한국전쟁에 개입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한국의 일부 전문가가 우려하는 것처럼 북한 체제 붕괴 후 중국이 북한을 직접 통치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자국 내의 소수민족 자치구인 시짱티베트와 신장위구르를 통치하는 데도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대만과의 통일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을 접수함으로써 직면하게 될 국제사회의 지탄을 자초하면서까지 그런 모험을 감행할 가능성은 없다. 중국이 만의 하나 북한을 접수한다 해도 북한 경제를 재건시키는 데 들어갈 천문학적인 투자비용을 댈 능력도 의사도 없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미국이 대만의 안보를 보장해 주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리 없다. 중국은 대만해협을 놓고 미국과 직접 대치하고 있다. 미국이 중·대만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의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북한의 붕괴를 중국이 좌시할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고 북한의 핵무기가 중국을 겨냥하게 될 리도 만무한 판에 말이다.

결국 중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반도의 현 상황은 과히 나쁘지 않다. 더구나 북한 체제 유지에는 돈이 얼마 들지 않는다. 이번에 원자바오 총리가 북한에 약속한 ‘대규모 무상원조’라는 게 기껏 2000만 달러에 불과할뿐더러 압록강에 다리 하나 놓은 건설비를 내겠다는 정도다. ‘대규모’는커녕 그야말로 ‘껌값’이다. 이만하면 비용에 대비한 효과를 감안할 때 괜찮은 투자가 아닐 수 없다.

지금 동북아시아에서는 북한과 중국, 한·미·일·대만 간의 세력 균형이 완벽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중 교역이 아무리 늘어나고 역내 경제적 통합이 촉진되고 있다 해도 지정학에 기초한 세력 균형을 깨뜨릴 수는 없다. 그리고 현재의 세력 균형이 유지되는 한 중국은 북한을 지원할 것이다. 북한 체제가 상당히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세력 균형을 깰 수 있는 방법은 한·미·일이 북한을 끌어들이는 방법밖에 없다. 물론 중국이 이를 방해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간파한 중국은 이미 북한과의 관계 회복 및 증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북한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하면서 양측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과 양보를 받아내려고 할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 현상 유지를 타파할 방법은 북한을 설득하는 길이다. 중국이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경우 북한이 궁극적으로는 백기를 들고 핵무기를 포기하게 될 것이라는, 지정학적인 기초를 무시한 허황된 기대는 하루빨리 접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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