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미래와 자신을 바꾸신 아버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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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호 35면

저는 지금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지난 시즌 제가 속한 KCC 프로농구팀이 우승을 했기 때문이라고요? 제가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의 농구대표팀 감독이기 때문이라고요?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On Sunday 기획칼럼 ‘당신이 행복입니다’

저는 농구인입니다. 코흘리개 시절에 농구공을 잡았고, 불혹을 넘긴 지금(44세)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농구공의 깔깔한 감촉이 싫었던 적이 단 한순간도 없습니다. 이른 아침 플로어에 공을 튀길 때 플로어가 가볍게 떨리고 텅빈 체육관에 기분 좋은 여운이 울려 퍼지는 순간이 즐겁습니다.

저는 농구밖에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누렸습니다. 좋은 학교를 나왔고, 훌륭한 동료들과 더불어 땀 흘렸으며, 무엇보다도 많은 농구팬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팬들은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지금도 아낌 없는 격려와 응원을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제 삶과 행복의 근원은 농구입니다. 그러나 큰 나무도 작은 씨앗에서 움트듯, 제 삶과 행복의 근원에는 씨앗을 뿌리고 거름을 주고 공들여 가꾸어준 분들이 계십니다. 용산고에서 저를 지도하신 양문의 선생님, 중앙대에서 저를 기르신 정봉섭 선생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단 한 분, 제 행복의 원천이 되는 분을 골라야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아버지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생명을 부여하셨고, 무제한의 사랑과 무제한의 용서와 무제한의 인내로 저를 품어내는 거대한 가슴이며 낙원과 같은 분입니다.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결단력과 추진력의 화신이었습니다. 초등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농구를 처음 접한 저에게서 재능을 보신 아버지는 농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시켜 저와 농구의 인연을 맺어 주셨습니다. 당신이 만들고 가꾼, 분신과도 같았던 정원을 없애고 농구 골대를 놓아 주신 아버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순간 아버지는 자신의 과거와 아들의 미래를 바꾸신 듯합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버지는 자식의 이름으로 사는 아버지다”라고.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는 곧 아버지의 미래고 아들의 미래와는 내 과거, 현재, 미래 모두를 주더라도 바꿀 수 있다”고 하셨죠. 아들의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린 세월만큼 아버지도 연로하셨고, 이제는 건강이 좋지 않아 아들이 감독으로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하던 순간에도 경기장을 찾지 못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그 크고 넓은 사랑을 이제는 제가 두 아들, 웅이와 훈이에게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향한 저의 사랑이 아버지께 받은 사랑의 절반이나 될까요.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제 아버지만큼 훌륭한 아버지는 못 될 듯합니다.

‘군사부일체 (君師父一體)’라고 합니다. 농구가 삶의 전부인 저에게 저의 임금님, 저의 군(君)은 변함 없는 사랑으로 응원해 주시는 팬들입니다. 사(師)는 오늘의 허재를 만들어 주신 두 분의 스승이며 부(父)는 아버님입니다.

그분들이 곧 제 행복의 근원, 아니 사랑 그 자체입니다. 그중 제일은 아버지, 당신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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