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추구하되 가슴이 따뜻한, 꼭 자신을 닮은 인재를 키우는 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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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호 31면

만남이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른다. 스치는 인연도 함부로 해선 안 된다. 박영식 총장 신부와는 군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는 부산 군수사령부 예하부대에서 복무했다. 나는 군의관이었고 당시 박 신부는 사병이었다. 앞으로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되실 분이란 생각에 내 나름대로 일반 사병 이상으로 대해 드렸고 그래서 좋은 관계로 지냈던 추억을 갖고 있다. 이렇게 한국을 대표하는 성서학자이자 가톨릭대학교 총장이 된 박 신부를 다시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본 박영식 신부

박 신부는 집중력과 의지가 엄청나다. 박 신부에게 신학생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오후 10시 이후 공부를 할 수 없었던 점이었다. 10시에 의무적으로 잠자리에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로마 유학 시절 밤새도록 공부할 수 있어서 그렇게 좋았다고 하니 천상 공부하는 학자다. 그는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매년 150명 정도가 입학해 10여 년간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지만 그중 두세 명에게만 박사학위를 준다고 한다. 박 신부는 1997년 귀국해 가톨릭대 교수로 있으면서 지금까지 60권이 넘는 책을 쓰고 번역했다. 본인 말대로 ‘공부라면 원 없이 해본’ 사람이다.

총장으로 취임한 박 신부는 지독히 공부하던 열정을 모두 대학 경영에 쏟아붓고 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동서남북을 뛰며 일하고 있다. 총장이 솔선수범해 뛰니 자연히 대학이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모교이기도 한 가톨릭대가 하루하루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뿌듯하다.

박 신부가 키워내고 싶어하는 인재는 ‘진리를 추구하되 가슴이 따뜻한 인재’다. 그는 도덕적이고 희생정신이 투철한 윤리적 인재라야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의사로 평생을 살아온 내가 볼 때 요즘 젊은 의사 후배들을 보면 종종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들도 순수한 의료 봉사 정신을 품고 의대에 들어왔지만 인턴·레지던트를 거치면서 처음 품었던 뜻은 차츰 없어지고 그 좋은 머리로 성형이니 라식이니 소위 돈 되는 분야로만 진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을 투자해야 하는 연구개발은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다. 의료계 전체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좋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세계를 위기로 몰아가는 것은 세계적 수준의 석학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최고의 지식을 습득했으나 인간과 자연환경을 존중할 줄 알며 사회적 화합을 이끄는 영성과 지혜를 습득하지 못한 때문”이라며 “우리는 영성과 지성을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박 신부의 인재관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박 신부가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교육 생태계가 더욱 기대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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