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표앞엔 개혁도 열중쉬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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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일 아침 국민회의 이만섭 (李萬燮) 총재권한대행이 주재한 당 8역회의는 '과세 (課稅) 특례제도 폐지' 문제로 논란을 벌였다.

대다수 참석자들은 손을 내저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실정을 모르는 발상" "표 떨어질 소리" "소상공인.서민층 보호가 김대중 대통령의 노선인데 반대로 가는 것이냐. " 이에 일부 당직자는 "돈많이 버는 자영업자들이 특례제도를 악용해 세금을 덜 내고 있다" 고 심각한 부작용을 지적했다.

그러나 '선거가 우선' 이라는 논리에 폐지론은 묻혔다.

회의 후 이영일 (李榮一) 대변인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고 발표했다.

그 소식을 들은 과천 경제 부처의 젊은 실무자들은 "그럴 줄 알았다" "중산층 보호가 뭔지 모르면서, 표가 정책을 좌우하는 것이냐" 고 허탈해했다.

재정경제부에서 없애야 할 우선 대상에 늘 오르는 과세특례제도는 이렇게 해서 살아날 분위기다.

시행한 지 20년쯤 되는 과세특례제는 소상인.소기업인들이 세금을 덜 내도록 혜택를 주는 것. 그런데 세금을 신고할 때 매출액을 기준 (4천8백만원) 아래로 줄이려는 얌체 고소득 자영업자들 때문에 세무당국이 골머리를 앓았다.

과세특례제는 영수증제도 정착의 걸림돌이라는 지목을 받는 처지가 됐다.

그래서 현 정부는 '상거래의 투명화' '조세정의' 를 내걸고 이 제도를 없애기로 작심했고, 지난달 15일 강봉균 (康奉均) 재경부장관은 폐지일정 (내년 7월) 까지 발표했다.

그런데 한달도 못돼 이날 회의에서 제동이 걸린 것이다.

오락가락의 연속 속에 국민들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정책혼선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집권당의 개혁을 바라보는 자세다.

과세특례제도가 그 부작용으로 인해 '개혁대상' 의 판정이 났음에도 선거 때문에 주춤하는 태도는 개혁의 정당성에 흠집을 내고 있다.

이는 "공평한 과세를 통해 경제적.사회적 정의를 구현하겠다" 는 金대통령의 8.15 경축사와도 거리가 있다.

그로 인한 세금피해는 봉급생활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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